외무부 소말리아답사반 현지보고(파장 클 PKO파병: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흔속의 수도 뜻밖에 평온/전기·수도시설없고 성한 건물은 호텔뿐/6.25때의 국제사회 빚 갚을 호기 실감
지난 91년9월 우리가 유엔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주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로부터 소외받아 왔다. 이제 유엔 회원국으로서 우리도 경제성장으로 다져진 국력을 기반으로 우리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할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외무부와 국방부관계관 4명으로 구성된 「소말리아 PKO 현지조사반」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케냐를 통해 소말리아에 들어갈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케냐를 출발하려던 지난달 25일 평화유지군(UNOSOM)측이 갑자기 일정을 연기하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UNOSOM측은 연기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으나 호텔에서 본 CNN­TV는 모가디슈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즉시 본국에 보고하고 대기했다. 좀 불안하기도 했다.
다음날 소말리아로 떠났다. 그때서야 안 것은 우리를 태워갈 우크라이나제 군용수송기가 전투에 대비해 모가디슈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가다슈공항에 도착하자 유엔제복을 입은 업저버들이 우리를 맞았다. 지난 91년 격렬한 내전을 피해 남북한공관이 공동작전으로 탈출한 후 한국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소말리아땅을 밟은 것이다. 우리는 준비된 차량 두대에 나눠 탔고,업저버들이 두명씩 함께 탔다. 기관총과 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반트럭이 우리가 탄 차 앞뒤에서 호위했다. 이렇게 삼엄한 호위는 치안상태에 대한 불안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가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 위한 조사단으로 왔다는 이유로 극진히 대우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표시이면서 평화유지군에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평가받을 수 있는가를 절감했다.
모가디슈 시내 모습은 어제까지도 총격전이 벌여졌던 곳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드는 어린이들,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 얼마 안되지만 조그만 상점들에서 거래도 이루어지는 등 우리나라의 어느 조그만 읍 풍경을 연상시킬 정도로 평온했다.
우리 일행이 안내된 숙소는 시내에 있는 모가디슈호텔이었다. 현지에서는 이 호텔을 「저널리스트호텔」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세계 유수 언론사특파원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문마다 익히 아는 언론사들의 문패가 붙어 있었다.
수도인 모가디슈엔 전기와 수도시설이 안돼 있었다. 모가디슈호텔도 자체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했다. 우리방 바로 뒤에 설치된 발전기가 밤새 요란한 소음을 냈다. 또 식수는 외부에서 공수해오고,일반 생활용수는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옥상에 올라가니 나이지리아군인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기사송고와 화면 전송을 위한 안테나들이 여러개 설치돼 있었다. 호텔 옥상에서 본 모가디슈 외관은 그런대로 도시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나 주변에서 성한 건물은 호텔밖에 없었다. 군데군데 총구멍이 난것이 사람이 사는 것같지 않았다.
호텔가까이 있는 공터에는 피난민들의 움막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저멀리 이른 새벽부터 수백m나 되게 줄을 서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우리는 스웨덴이 운영하는 야전병원을 봤다. 야전병원이라도 시설이 너무 좋아 기가 질렸고,상당수 침대가 비어 있어 우리가 당초 파병 가능분야로 생각한 의료단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UNOSOM관계자들도 건설공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수도 모가디슈 시내밖에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40여년전 우리도 유엔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40년만에 수혜자에서 벗어나 이제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라를 도울수 있게 됐다. 소말리아를 돕는 것은 오랫동안 우리가 기다려온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말리아 답사반장:외무부 아프리카2과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