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영국 펑크 분위기 정혜선 강렬한 비트… 이국 정취 이은미 힘과 리듬의 균형 돋보여 정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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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여성 가수의 존재 자체가 고사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여가수 기근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남성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둣한 가닐픔을 거부하는 여성가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강렬한 예술혼을 불태우려는 신인여가수 정혜선·이은미·정경화 등이 미모와 음악외적인 연예활동만을 선호하는 음반제작자와 대중의 기호를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분히 일본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아 가냘픈 이미지의 미모와 귀여움만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강수지·하수빈 류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적 힘으로 찬찬히 빛나고 있다.
가창력이나 음악 자체에 관련한 기량을 기르지 않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여가수들의 위상을 살리려는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히트곡과 비슷하게 모방하는 관행을 지양하고 개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다.
정혜선은 지금까지 나온 대중음악의 어느 장르로도 분류되기 어려운 다소 충격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보수적인 사람이 듣기에는 「짜증부리거나 울먹이는 목소리」라는 인상을 받을 정도의 음조에다 70년대의 영국 펑크 음악적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자작곡『오 왠지』등을 보여주고 있다.
전곡을 캐나다에서 연주, 녹음한 신인 이은미의 음반은 영어제목 가사의 노래까지 포함, 강렬한 록비트로 종래의·우리 가요와는 전혀 다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SBS-TV『모래위의 욕망』에 삽입되어 드라마 내용과 함께 이국적인 풍미를 물씬 풍기는 곡『기억속으로』등에서 이은미는 재즈와 록을 소화해 내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신촌블루스의 라이브공연에서 힘 있고 독특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던 정경화는 정제된 리듬과 매끄러운 목소리의 균형감각으로 새로이 빛나고 있다.
역시 드라마 주제곡인『거리에 서서』와『내가 가는 길』은 사랑·이별·눈물로 일관된 우려 가요의 내용에서 한발 뛰어 오르려하고 있다.
이들 신인들과 함께 단순한 흥겨움으로 한 몫 보았던 이상은은 일대 변신을시도, 최근 블루스적 분위기를 주조로한 『언젠가는』이라는 노래로 음악 자체로서 도전하고 있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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