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없이 끝난 개혁세미나/이상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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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 한 파도가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역사가 무얼 요구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모두들 심기일전해 해야할 일에 힘과 정성과 의지를 쏟아야 한다.』
8,9일 서울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민자당의원 세미나 벽두에 김종필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어 당기구축소와 재산공개 등을 주도했던 최형우사무총장도 『우리당은 재산공개로 큰 아픔을 겪었다』면서도 『그러나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새시대의 개혁은 대통령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게 아닌만큼 의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자당의원 세미나는 김 대표나 최 총장의 인사말에서 잘 나타나 있듯 재산공개파동으로 헝클어진 당내분위기를 일신하자는 뜻에서 열렸다. 요컨대 당과 의원들이 찜찜한 구석을 털어버리고 활력과 원기를 되찾아 변화와 개혁에 더욱 매진하자는 다짐을 위해 모인 자리였다. 또 대외적으로는 이같은 결의를 국민에게 알려 실추된 당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번 세미나가 이같은 취지를 잘 살렸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세미나의 진행이 주먹구구식이었는데다 의원들의 태도에서도 심기일전하겠다는 단단한 각오와 성실성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로 세미나 첫날 만찬후로 잡혀있던 상임위별 토론회가 열리지 못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대신 이 시간에는 술판과 고스톱판이 벌어졌는가 하면 몇몇 의원들은 사우나탕과 집에 가버렸다.
『무슨 신명이 나서 토론하겠느냐.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의견을 모은들 그게 개혁에 쓸모 있는줄 아느냐.』 술에 취해 용감해진 민정계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 민주계의원의 말처럼 이번 모임을 통해 민자당의원들이 재산공개로 더욱 골이 팬 계파의식을 좁혀 돌쩌귀처럼 사이가 좋아진다면 당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일지 모른다.
그러나 화합과 단결에 이르는 과정이 개혁하는 사람들 답지않게 교훈적이지 못하고 원시적이었다면 공들여 만든 이번 세미나는 결국 금의야행(애썼으나 평가받지 못하는 일)으로 끝났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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