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장관은 사람, 노조는 봉급 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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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매주 화요일이면 국무회의가 열린다. 6월 12일부터 5주째 올라오는 단골 안건이 있다. 다름 아닌 정부조직 일부 개정안이다. 수십 명에서 몇 백 명이던 증원 규모는 마침내 7월 10일 2151명으로 피크를 이뤘다. 해당 부처도 리스트에서 빠지면 ‘힘 없는 부처’로 여겨질 만큼 많은 곳이 망라돼 있다. 화요일이면 정부 조직이 커진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이렇게 늘린 국가공무원(지방공무원 제외)이 상반기에만 6100명이다.

지난 6월 출범한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는 퇴직 공무원의 절반만 충원하면서 내년에는 3만∼4만 명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임기가 7개월 남은 한국 참여정부의 공무원 자릿수 늘리기는 멈추질 않는다. 10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의결로 정원이 늘어날 부처는 국세청을 필두로 보건복지부·교육인적자원부·재정경제부 등 4곳이다.

부처 나름대로 증원 명분을 댄다. 국세청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근로장려세제(EITC) 담당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본청에 근로소득지원국과 3개과를 신설하는데 5급 이상 고위직만 해도 120명이다. 덕분에 한국은 세무공무원 2만 명 시대를 열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한·미 FTA 후속 조치(국제협력관)와 의료 서비스 및 검사체계 강화를 내세웠다. 교육부는 인적자원정책국을 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재경부는 대부업 관리를 위한 중소서민금융제도과를 만들었다.

새로운 제도 도입이나 공공 서비스 욕구 등 공무원 인력 소요에 변동 요인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그 일을 맡을 인원을 늘리고 국·과 등 조직을 신설하는 식으로 쉽게 해결하려 들어선 곤란하다. 상황 변화 및 규제 완화로 일거리가 적어지거나 효율성이 떨어진 조직과 인원을 새 업무와 서비스로 돌리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총리가 위원장인 규제개혁위원회를 두고 규제를 일제 정비했다는 데도 공무원 수가 줄기는커녕 계속 불어난다. 10일 현재 국가공무원은 59만6200여 명으로 4년 반 사이 5만여 명 증가했다. 차관급이 23명, 장관급은 7명이나 늘었다.

이런 판에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9일 건국 이후 처음인 공무원 노사 단체교섭에서 362개에 이르는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올해 임금 10% 인상과 차등 지급하는 성과상여금제의 기본급 전환 외에 민간 부문에선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수당 신설을 제안했다.

20년 이상 근무한 55세 이상 6급 이하 공무원에게 월 5만원 원로수당, 대도시 근무자에게 월 5만원 생계수당, 장기교육 및 출산휴가 직원의 업무를 대신할 경우 월 10만원씩의 업무대행수당 지급 등이다. 장관은 정원을 늘리고, 노조는 봉급을 올리면 팍팍 늘어날 공무원 인건비는 누가 책임지나?

참여정부는 ‘작은 정부보다 효율적인 정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일만 잘하면 되지 정부 규모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자꾸만 커지는 정부는 나라살림 중 어쩌기 힘든 경상비 증가로 직결된다. 2002년 15조3000억원이었던 공무원 총 인건비는 올해 21조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참여정부 들어 해마다 1조원도 넘게 불어난 것이다.

국민 세금이 공무원 인건비와 같은 경상비로 지출되는 몫이 커지면 그만큼 다른 필요한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프랑스와 일본 등이 ‘작은 정부’를 내세워 공공개혁을 추진하는 게 어디 일을 덜 하자는 것인가?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다.

설마 참여정부가 일자리 창출 약속을 공무원 수 늘리기로 지키려는 것은 아닐 게다. 새 정부 들어 불어 닥칠 듯한 통폐합 등 정부조직 개편을 예상해 미리 몸집 불리기를 하는 것일까? 공무원 봉급은 국민 세금이다. 그 수를 늘리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늘리지 말고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듣고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지난 한 달여 사이 조직과 인원을 늘린 부처 외에 다른 데서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마침 17일이 제헌절이라 6주 연속 매주 화요일 국무회의 공무원 늘리기 의결이란 진기록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지.

편집위원 (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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