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관계」 실무성격 짙어/미­러 정상회담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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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핵」 거론 중국동조 촉구의미/미 주도 러 개혁 G7동참 독려도
두차례의 회담이후 4일 가진 공동기자회견을 끝으로 마무리된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밴쿠버정상회담은 과거 미소정상회담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실무적인 성격의 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다.
두나라 정상은 특정 지역문제를 놓고 서로에게 양보를 촉구하지도 않았으며 긴박한 협상의 순간도 연출하지 않은채 「친선과 동반자관계」를 강조했다.
러시아내 보수·민족주의세력들이 미국과 서방에 기대는 옐친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지만 클린턴과 어깨를 나란히 한 옐친의 모습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있어 오는 25일 국민투표와 그 이후 그에 대한 지지를 규합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러시아 경제개혁 작업의 성공여부가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는데 관건이 된다고 보고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대 러시아」「국제사회대 러시아」라는 두개의 채널을 통해 경제개혁 지원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안을 확정한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보따리를 챙겼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비록 조지 부시행정부시절의 미 집행분을 포함하기는 했지만 비핵화지원금 2억1천만달러 등 무상원조 6억9천만달러,곡물차관 7억달러 등 모두 16억2천만달러의 지원을 발표,당초 약속보다 6억달러를 더 얹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것은 미국이 팔을 걷어 붙이고 대러시아 지원에 나서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일본 등 G7국가 등이 러시아 지원에 동참하는 계기를 만들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를 통해 다국적 경제지원책을 가속화하는 기회를 잡았다는 점이다.
이같은 국제적인 지원방안은 오는 14,15일 동경에서 열리는 G7외무­재무장관 연석회의에서 본격 거론되겠지만 IMF의 러시아 부채상환연기 등 여러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경제지원문제에 초점을 맞춘 정상회담에서 두나라가 북한 핵문제를 의제로 논의한 것은 미국의 핵확산금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회담후 채택된 밴쿠버선언에서 『미·러시아 양국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의무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발표를 번복할 것을 촉구했다』고 천명했다.
미·러시아는 이미 부시­옐친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으며 이번에는 북한이 NPT를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이기 때문에 논의여부가 주목을 받았었다.
미국으로서는 제1단계 전략무기제한협정(START­Ⅰ)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공화국 문제와 러시아의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 실행문제 등 핵확산방지 및 통제에 많은 관심을 쏟았으며 이번 회담에서 이 문제를 러시아측과 비중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은 세계적인 핵확산방지노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돌출한 북한의 NPT탈퇴문제에 대해 매우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며 이미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옐친으로서 클린턴대통령과 특별한 이견을 보일 수가 없었다고 본다.
또 북한 핵문제가 유엔안보리로 옮아가면서 미국·러시아와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한에 대한 거의 유일한 영향력 행사국인 중국정부가 이 문제 처리에 있어 공동보조를 취하기를 바라는 자세에서 두나라가 북한 핵문제를 거론했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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