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일파 일본의 지한파 정치권서 퇴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선 박태준·김재순씨 떠나고 일본선 다케시타 정계은퇴 압력/재산공개 후유증에 설땅잃어… 일대표단은 방한연기
정치권의 일본통 정치인들,이른바 「지일인맥」이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
대통령선거·청와대비서진 인선·새정부 조각과 최근의 민자당재산공개 파동을 거치면서 한일정치권간의 파이프 역할을 했던 국내정치인 다수가 흠집이 나거나 아예 정계를 떠났다.
지난 1년사이에 한일의원연맹의 우리측 회장이 두차례나 갈렸다.
박태준씨는 연맹회장직은 물론 포철회장 자리마저 내놓았고 후임 김재순회장도 이미 의원직을 사퇴했다.
묘하게도 일본측(일한의원연맹)의 현회장인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와 연맹 간사장을 맡고 있는 가토 무쓰키(가등육월) 등 일본 자민당내 지한파정치인들도 정계은퇴압력·뇌물파동 등으로 일대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이를 들어 김종필대표는 최근 『국제적인 정치인 수난시대』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양국이 각기 다른 사정을 안고 있으나 지금이 기본적으로 양국의 유권자·정치인이 대폭 세대교체돼 가는 시점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정계를 떠난 박태준·김재순씨외에 민자당내에서 일본통으로 알려진 인물로는 김종필대표를 비롯,이병희총재상임고문,권익현·정석모·김윤환의원,김수한 전의원 등이 손꼽히고 있다.
일제말기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박준규국회의장 역시 일본정계를 잘 아는 인물이었으나 재산공개 파문을 겪고 당을 떠났다. 탈당이나 정계은퇴를 하지는 않았더라도 당내 일본통의원들은 대부분 민정·공화계로 새정부 출범후 영향력이 위축된 인물들이다. 「지일파퇴조」라는 해석도 이 때문에 나왔다.
한일의원연맹의 다음 회장으로 유력시되는 김윤환의원은 주일특파원경력에 5공초 연맹간사장(사무총장격)을 지냈다. 권익현의원은 5공출범시 일시 단절됐던 한일 정계교류를 복원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데 이어 12대국회(85∼88년) 당시 회장을 역임했다. 정석모의원은 현재 연맹간사장을 맡고 있다.
김수한 전의원은 야당시절부터 대일창구역을 오랫동안 해온 정치인으로 특히 사회당·공명당 등 일본의 야당사정에 밝기로 유명하다. 육사동기(8기)인 김종필대표와 이병희고문은 한일회담을 계기로 흑막과 유착으로 얼룩지기 시작한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던 전형적인 구시대적 의미의 일본통으로 꼽힌다.
○…한일의원연맹의 일본측 의원들은 당초 오는 10일 김 대통령 취임축하를 명분으로 한국을 방문,2박3일간 머물며 대통령을 예방하고 국내 지일정치인과의 「상호 인맥점검」도 할 계획이었다.
대통령 취임전인 지난 1월 몇몇 의원이 당선축하차 방한한데 이은 수순이었다.
그러나 국내 민자당의 사정이 어수선한데다 방한단의 수장인 다케시타회장이 일본내 여론의 집중공격을 받아 방한은 일단 연기됐다. 「정계추방을 당해야 할 판에 한가롭게 무슨 방한이냐」는 여론이 드셌던 것이다. 연맹의 우리측 간사장인 정석모의원은 『이달 하순께 일본측 대표단이 방한할 것이나 다케시타가 올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우리도 그 전에 새 회장을 맞는 등 연맹체제를 정비하게 될 것』이라고 양국의 어수선한 사정을 설명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최근 사석에서 「지일파 퇴조」 시각에 대해 『일본정부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내 지일파들이 그동안 일본식 교육을 받은 연로한 층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에 이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고 반문했다.
최근의 조각·재산파동의 여파로 몇몇 사람이 배제됐다고 해서 「미·일중심외교」까지 천명한 김 대통령 정부가 의식적으로 지일파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파원 등 국내 일본인들간에는 새 정부의 일련의 인사결과를 놓고 일본의 씨름(스모) 용어를 인용,『가타스카시(돌진하는 상대를 피하면서 어깨를 살짝 쳐 쓰러뜨리는 수법. 상대를 허탕치게 한다는 뜻도 있음)를 당했다』며 서운함을 표했다는 말도 있다. 정부요직에 6·3세대와 미국유학파가 대거 등장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노재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