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까지 축구할래요"|한국여자축구 대들보 이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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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바닷가에서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볼을 차던 왈가닥 소녀가 한국여자축구를 걸머질 대들보로 성장했다.
지난달 31일 폐막된 봄철대학축구연맹전 여대부에서 경희대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독식한 이명화(이명화·20)는 대표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명화는 이번 대회 3게임에서 모두 6골을 터뜨렸으며 특히 한양여전과의 경기에서는 혼자 4골을 넣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독무대를 이뤘다.
73년 경북 울진에서 어업을 하는 이천식(이천식)씨의 2남2녀중 막내딸로 태어난 이명화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는 마을대항 축구대회가 열릴 때면 항상 마을대표로 뽑힐 정도였고 오빠 2명도 모두 중·고등학교 시절 선수생활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이명화는 또 동네에 유난히 또래 여자애들이 없었던 탓에 항상 남자애들과 어울려 볼을 차며 놀았다.
죽변국민학교 시절에는 달리기를 잘해 육상선수로 뛰었으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진로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경북체중에 진학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았으나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 교문을 나서는 순간『펜싱 한번 해보지 않을래』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러나 갑자기 시작한 펜싱은 적성에 맞지 않았던지 별 신통한 성적을 내지 못한 채 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나라에도 여자축구가 생긴다』는 뉴스는 가뭄꼴에 쏟아진 한줄기 소나기와 같은 희소식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이 길이 바로 내 길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명화는 그 길로 경북체고를 떠나 축구부가 생긴 강릉 강일여고로 전학한다.
졸업 후 숙명여대로 진학했지만 이 또한 1년도 안돼 축구부가 해체되는 바람에 자퇴, 지난해 12월 축구부를 창단한 경희대에 입학하는 등 이명화의 축구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드리블·슛 다 좋고 낙하지점 포착도 뛰어납니다. 특히 트랙을 20바퀴 정도 돌 때는 남자 선수들도 못따라 갈만큼 심폐기능이 탁월합니다』 창단 후 첫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태운(김태운)경희대 감독은 이명화 칭찬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나의 길은 축구』라고 단호히 말하는 이명화는『32세까지 축구를 하겠다』며 싱긋 웃는다. <손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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