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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km 고속철 시대] 4. 지방경제 '날개' 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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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수도권에 가려온 지방경제가 고속철도 개통으로 부푼 기대에 차 있다. 특히 정차 지역은 대대적인 개발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커지는 경제적 파이를 더 많이 차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 간 불균형이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기대와 함께 불안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엇갈릴 지역 간 명암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동대구 벤처밸리. 고속철도 대구역사 인근의 첨단산업 밀집지역이다. 경북 영천의 MP3(디지털 음향기기) 제작업체 현원은 지난해 8월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송오식 사장은 "외국이나 서울의 바이어를 자주 만나야 하는데 고속철도가 가장 빠르고 경제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 이전에 간단찮은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론 수지가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회사뿐 아니다. 지난해 동대구 벤처밸리로 입주한 업체는 예년의 두배 수준인 20여곳으로 늘었다. 대구시가 30만평 규모로 조성 중인 이곳이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탄력을 받는 것이다.

호남 쪽도 마찬가지다. 이미 2001년 말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뒤 전남 목포시는 관광객이 한꺼번에 불어나 놀란 적이 있다. 2002년 목포를 찾은 관광객은 90만여명으로 1년 새 80%나 늘었다. 목포시는 고속철도가 관광객 1백만명 돌파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나 목포처럼 지방 거점 도시들은 고속철도가 수도권 집중을 크게 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인천.경기도 등 수도권에 나라 경제의 절반이 몰려 있다고 보면 된다. 인구는 전체의 47.2%가, 국내총생산은 47.7%가 수도권 차지다. 그러나 고속철도가 개통돼 이동시간이 단축되면 집값.땅값 부담이 큰 수도권을 고집할 이유가 줄어든다. 인구와 경제의 지방 U턴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방경제는 반사이익을 누린다. 국토연구원이 경부고속철도 개통 뒤 2020년까지의 경제효과를 분석한 결과 생산.고용 등에서 수도권은 감소하는 반면 지방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고속철도를 지역발전의 호기로 삼기 위한 청사진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와 대덕벤처밸리.대덕테크노밸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광주는 광(光)산업 성장에 호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도는 김천.구미 등에 반도체.컴퓨터.통신산업 등 첨단복합산업단지를 추진키로 했다. 경기도 광명시도 첨단산업인큐베이터센터와 음악산업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목포와 경주는 관광객 유치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단국대 김영모 교수는 "여객 위주의 고속철도는 제조업보다 인적 교류가 많은 지식.정보산업 발전에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개발 붐은 대도시보다 중소도시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틀이 짜인 서울 등 대도시는 개발 효과가 역세권 주변에 한정된다. 이에 비해 중소도시는 역세권 주변 신개발과 구도심 재개발이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속철도 역사를 매개로 충남 천안과 아산, 경북 김천과 구미는 생활.경제권이 하나로 묶이는 광역도시로 커질 수 있다.

충남발전연구원 송두범 지역개발부장은 "천안.아산이 산업규모 면에서 대전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속철도가 서느냐 지나치느냐도 지역발전의 중요한 변수다. 정차역을 끼고 있는 도시는 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국토연구원 정일호 연구위원은 "고속도로는 발전을 공간적으로 확산시키지만 고속철도는 정차역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시키는 '블랙홀'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정차 도시가 지역 중심도시로 자리잡으면서 주변 지역들이 위성도시화할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고속철도 역사를 만들어달라는 지역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밀려 시간이 갈수록 역이 늘어났다.

하지만 정차 지역도 치밀한 준비 없이 기다리다간 그나마 지키고 있던 경제기반조차 흔들릴 위험이 있다. 고속철도는 무조건 수도권에서 사람과 자원을 가져다주는 '산타클로스의 썰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 지방의 에너지를 수도권으로 흡수하는 '고속 빨대'가 될 수도 있다.

"고속철도는 국토가 균형발전할 수 있는 계기에 불과합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부 대책이 맞물려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지요."(한양대 김홍배 교수)

고속철도가 정차하는 지방 대도시도 나름대로 숨은 고민들이 있다. 대구시는 노동력 유출로 전통적인 섬유산업과 안경 등 특화산업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부산시는 2010년 2단계 개통 전까진 서울에서 신선(新線)으로 이어지는 대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고속철도가 새로 그릴 경제지도에 대해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것이다.

◇특별취재팀=강찬수.정철근.장정훈.권근영(정책기획부), 안장원(조인스랜드), 오종택(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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