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간장 재현에 한평생 전 명지대 교수 강인희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간장의 존재는 그 집안 안사람의 살림솜씨와 음식맛의 기품과 깊이를 더해주는 것. 이 장은 맛이 깊고 농후한데다 영양가는 거의 보약수준이라 특별한 날 집안어른이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육포·약식·두텁떡 등 귀한 음식에만 아껴가며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식의 재현과 계승에 평생을 바쳐온 강인희씨(75·전명지대교수)의 이천읍자택 장독대는 장독의 배치부터 위계질서가 있다. 장독대 맨 앞줄 왼쪽에 가장 서열이 높은 30년 묵은 간장독이 있고 그보다 젊은 연령의 간장독들이 그 뒤를 따른다.
간장의 최고참인 30년 묵은 간장은 중간 크기의 독에 9부정도 차있다. 오랜 세월 농축된 탓에 손가락으로 찍으면 점액처럼 끈끈하게 착 달라붙는다. 그 맛은 간장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깊고 구수해 한 숟가락 퍼서 막 지은 하얀 쌀밥에 비벼먹고 싶은 충동이 절로 인다.
이 간장의 양은 3년 전이나 올해나 변함이 없고 내년에도 같을 것이다. 이렇게 간장을 수십년 보관하기 위해서는 절도와 원칙에 따른 각별한 돌봄이 필요하다.
그 하나가 간장승진. 농축돼 날아갔거나 먹어 없어진 양만큼을 그보다 하나씩 젊은 연령의 간장에서 보충해 주는 것이다.
또 3년만에 한번씩 독갈이를 해야한다. 먼저 깨끗이 소독된 다른 독에 간장을 옮기고 원래 독에 가라앉은 소금을 씻어낸다. 이것을 햇볕에 잘 말린 뒤 다시 도수 높은 소주로 소독해내고 간장을 원래 독에 옮기는 것이다.
강선생댁 장은 맛좋기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만들 때부터 남다른 정성을 쏟기 때문. 이 댁의 장 담그기는 9월 햇콩이 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햇콩 한가마를 온식구가 둘러앉아 찌그러지고 병든 것은 한알 한알 골라내고 잘생긴 것만으로 메주를 쒀 띄운다. 그리고 스무번의 손이 간 메주를 정월의 설수(미생물 번식이 적은 추운 계절에 담가야 한다는 뜻)로 장을 담그는 것이다.
『모든 음식은 시작부터 정성을 다해야 맛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 특히 장과 같은 저장식품은 처음 만들 때의 정성이 다 만들어진 다음 통풍, 햇빛 쏘이기, 장독 닦아주기 등 보관까지 이어져야 맛이 변치 않고 깊은 맛까지를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권선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