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변호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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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월급쟁이가 겨우 아파트 한채를 마련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이른바 전매형식의 아파트여서 등기상의 소유주와 전매자의 명의가 달라 자칫하면 집을 날려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변호사를 찾아 상의하니 전말을 듣고서는 간단한 소장 한장을 쓰고 기백만원을 내라고 한다. 그다음 승소할 경우 성공 보수가 얼마에,소송 수임료가 얼마라는 단서를 또 붙인다.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그냥 집을 날릴 수도 없어 변호사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없다. 비록 간단한 민사관계 소송이라도 관계 당사자가 되어본 사람이면 변호사란 직업이 얼마나 대단한지를,변호사 수임료가 얼마나 높은가를 알게 되고 송사 곧 패가망신이라는 속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니 법으로 정당하게 해결해야할 일도 적당히 타협하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살아간다. 우리의 법의식을 왜곡시키는데 변호사의 수임료가 단단히 한몫 해온 셈이다.
요즘 연일 변호사의 높은 수임료가 문제되고 있다. 20억원짜리 소송을 승소한 대가로 6억여원을 요구한 변호사의 성공보수가 턱없이 높다해서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두 사람간의 약정이 있다해도 변호사회의 보수기준에 비춰 지나치게 많아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결이다.
변호사의 수임료가 이처럼 높아지는데는 사건 브로커와의 결탁이 있기 때문이라는 변호사 자신의 고백이 있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인천의 민경한변호사가 『인천법조』라는 회지에 「변호사여 부끄러워하자」는 글을 발표해 자신이 겪었던 변호사 세계의 부조리를 낱낱이 고백,참회하고 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변호사도 살기 위해선 사건브로커와 결탁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들에게 20∼30%의 소개비를 지급한다고 했다. 또 사무장을 3,4명씩 고용해 형사 및 브로커들과 밀착해 사건을 독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병원주변에 브로커를 풀어 배상금 소송을 노리는 「앰뷸런스 변호사」까지 동원되는 세태라고 한다. 갓 법복을 벗고 개업한 「전관」변호사는 고액의 수임료를 조건으로 안되는 사건도 되게하는 마법사가 된다고 한다.
이러니 수임료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수임료의 다과에 따라 민사소송은 결정된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일부에 속할 이들 부끄러운 변호사가 법조계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는한 우리의 법의식은 제자리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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