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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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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0년대 중국 허난(河南)성이 가짜와 사기술의 대명사로 불린 적이 있다. 장소는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중국의 국가주석이 각 성의 대표들을 접견하는 자리였다. “광둥(廣東)성 성장입니다.” 비서의 소개에 뒤이어 주석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잘 이어지던 순서가 허난성 성장 차례가 되자 잠시 멈춘다. “허난성 성장입니다.” 비서의 발언에 국가주석이 갑자기 돋보기 안경을 근시용 안경으로 바꿔 끼었다. 성장의 앞과 뒤, 아래와 위를 살피던 주석은 느닷없이 물었다. “이건 가짜 아니야?”

 베이징에서 유행하던 우스개다. 허난성 출신 작가가 ‘가짜 제조 동네’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고향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저술한 책에 소개되면서 적잖은 유행을 탔다. 허난성에 관한 우스개는 이어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술사가 중국을 찾았다.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진행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허난성에서 그는 까다로운 관중을 만났다. 세계를 감동시킨 그의 마술에 허난성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저것도 마술이야?’ 대강 그런 분위기. 급기야 그는 망신을 당했다. 무대 옆에 앉아 있던 여덟 살짜리 아이 하나에게 그의 모든 마술의 정체가 밝혀진 것. 결국 마술사는 소림사로 유명한 허난성에 남아 여덟 살짜리 사부를 모시고 마술을 다시 배우게 됐다는 내용이다.

 만리장성에 타일 입히기, 우주공간에 에어컨 달기, 히말라야 산맥을 평지로 만들기, 지구 전 지역에 붉은 페인트 입히기. 중국인의 가짜와 허풍을 얘기할 때 나오는 우스개들이다.

 골판지 만두, 해조류와 화학약품으로 만든 달걀 등으로 가짜 시비를 양산하는 중국의 얘기다. 허난성은 물론이고 중국의 많은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가짜 소동으로 지구촌에 바람 잘 날이 없다. 가짜 만들기는 결국 중국인들이 약육강식의 살벌한 강호(江湖)의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름하여 ‘편술(騙術)’이다.

 중국의 가짜를 성토하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나 우리도 가짜에 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한 생명과학자의 허풍이 사회 전체를 뒤집어 놓은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가짜 미국 박사 학위를 들고서 한국 사회를 활개친 여주인공이 나타나 소동이다. 중국이야 가짜를 만드는 것뿐이지만, 우리 사회는 가짜를 진짜로 간주하는 속기(俗氣)가 심하다. 학력에 약하고, 번드르르한 언행에 쉬이 넘어가는 버릇. 존재를 가리는 너울에 덧없이 속는 한국 사회의 단순함과 경박함이 더 큰 문제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