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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중개업자 "주식으로 먹고 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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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밀리지 않으려면 뭐든 해야죠. 넋놓고 있다간 굶어죽습니다."

서울 마포구 A부동산 중개업소 김 모 사장은 요즘 주식투자자로 변신했다. 다른 중개업자를 만나도 부동산보다는 증시와 관련된 얘기를 나눌 때가 더 많다. 거래 알선할 아파트를 확인하는 것보다 주식투자 종목을 알아보는 게 더 익숙할 정도다.

서초동 B중개업소에서 일하는 박 모 실장은 요즘 오전 제시간에 출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개업자들은 낮은 수수료도 불만이지만, 무엇보다 거래 자체가 거의 없어 월세 내기도 빡빡한 형편이다. 비교적 규모가 큰 전문점 형태의 중개업소는 더하다.

그렇다고 사무실 직원을 내보내기도 쉽지 않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광고를 줄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줄이는 만큼 문의전화도 끊길 수 있어서다. 원룸이나 상가를 관리하는 중개업소는 그나마 낫다. 중개수수료 외에 관리비 형태로 일정 금액의 꾸준한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외길'만 걸어온 일반 중개업소 사정은 한 마디로 최악이다. 결국 이들이 택한 방법은 아예 전업을 하거나 또다른 수입원을 찾는 일이다. 중개업자들 사이에 최근에 '투잡'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주식에 손을 대거나 집에서 조그마한 점포를 운영하는 사례는 흔한 일이다. 그마저 여윳돈도 없으면 아예 아르바이트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심야 대리운전이나 심지어 전단지 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비참함을 느끼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 사장은 "차라리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며 "매달 월세와 운영비로 300만원이 필요한데 지금은 정상적인 중개수수료로는 꿈도 못꾼다"고 푸념했다.

문을 닫는 중개업소도 속속 늘고 있다. 일선구청에 따르면 강남구의 경우 올들어 폐업한 중개업소는 400여곳에 달한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각각 270곳과 275곳이 간판을 내렸다.

최근 강남구 압구정동 중개업소를 닫은 이 모씨는 "재계약을 할 수 없어 입점당시 얹어줬던 권리금도 포기했다"며 "상황봐서 주식과 펀드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중개업소는 법무사 등과 공동사무실을 쓰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일종의 '샵인샵'(shop in shop) 개념이다. 시너지 효과는 바라지 않지만, 우선 월세 등 고정비를 줄일 수 있어 일정기간 버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동산연구소장은 "상대적으로 거래가 더욱 힘든 고가 주택단지 주변의 중개업소들의 경우 이미 본업대신 부업으로 연명하는 사례가 많다"며 "거래 활성화를 통해 숨통을 틔일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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