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사태(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백발이 성성한 70세의 노철인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봄 아테네의 법정에 섰다. 그는 자신을 고소한 세명의 시민을 포함해 약 5백명의 아테네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변을 토했다. 그의 말에는 확고부동한 진리애,뜨거운 사명감 그리고 투철한 사생관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 진리탐구를 위해 아테네 청년들과 나눈 대화,아테네 시민들의 썩은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토론이 전부였다. 그러나 투표결과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타락한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진리를 죽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바로 진리의 옹호를 위한 변명이었다. 이처럼 남이나 진리를 위한 변명은 아름답고 고귀하게 보이지만,자신을 위한 변명은 추하고 비겁하게 보인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변명은 대개 그 변명으로 해서 그 잘못이 더욱 크게 눈에 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변명으로 해서 사태를 더욱 그르친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례가 5공시절 박종철군 사건일 것이다. 치안책임자는 기자회견에서 「탁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고 변명했다. 그 말같지도 않은 말이 몰고온 파문이 어떠했는가.
그런데 요즘 우리는 또 다시 많은 변명사태를 지켜 봐야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주소를 옮기면서까지 땅을 매입,1백억원대 이상의 재산을 모은 한 여성장관은 『부동산 매입이 어찌 투기냐』고 했다가 장관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가하면 토지형질을 변경한 변호사 출신의 시장은 그것이 『불법행위인지 몰랐다』고 했고,검사출신의 한 장관은 『편법인줄 알면서도 부모의 심정』임을 호소했지만 결국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더욱 가관은 공직자의 재산공개업무를 맡고 있는 주무부서의 장관이 요즘 입만 벙긋했다 하면 늘어 놓는 변명이다. 그는 허허벌판에 절대농지를 편법으로 사놓고 그것을 「병원을 지을 땅」이라 했다.
자,그건 그렇고 엊그제 민자당의원의 재산이 공개되자 온통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또 어떤 변명들이 나올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