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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 (1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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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새엄마는 다시 울었다. 새엄마의 말을 듣고 나자,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일 같았다. 그 당사자가, 종아리를 맞으며 아픔을 느꼈던 당사자가 나만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그녀의 손을 붙들고 “아줌마, 아줌마의 의붓딸도 언젠가는 아줌마를 이해할 거예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렇게 어른스레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당사자이니 이런 경우 내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할 말이 없었다.

“난 결심했어. 우리 위현이가 애 딸린 남자와 결혼한다면, 사랑이 아니라 사랑 할아버지를 한다 해도, 절대로 그 결혼은 못 하게 말릴 거라고. 위녕, 너도 절대로 그런 결혼은 하지 마. 그건 우리들의 마음과는 너무 다른 일이야. 그런 의미에서 애들은 엄마가 키우는 게 맞아. 내가 정말 깨달은 건 그거야. 새엄마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어 있어. 동화는 어느 정도 보편적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 읽혀지고 그랬던 거야.”

“그래요…. 그건 아줌마 말이 맞아요. 게다가 주로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이니까….”

“그렇지.”

새엄마가 내 말에 맞장구를 치자, 아빠가 헛기침을 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이상스럽게 변해갔다. 나로서는 갑자기 새엄마와 내가 한편이 되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때 다시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울엄마’라는 단어가 휴대전화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전화를 받아들자,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녕 너 괜찮니?”

내가 아빠와 새엄마의 눈치를 보며 “…어” 하고 말을 얼버무리자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너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하면 예, 아니요로 대답해. 그것도 힘들면 뻐꾸기하고 제비라고 해. 뻐꾸기는 예,이고 제비는 아니요,야 알았지? 너… 결국 아빠 집에 갔니?”

엄마는 앞으로 추리소설을 쓴다더니 너무 그런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거기서 지금 이런 상황에 “뻐꾸기” 하고 대답해야 하나 생각하자, 그 와중에도 까르르 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아빠와 새엄마의 표정이 좀 굳어져 있어서 나는 그냥 “…어” 하고 대답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더 다급해 있었다.

“안 되겠다. 나 지금 네가 걱정 되어서 비행기 타고 올라가야겠다. 공항에서 E시는 가까우니까.”

“엄마 그런 거 아니야. 나 괜찮아. 이따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진짜라구. 뻐꾸기 제비 할 것도 없어. 응?”

엄마가 정말 비행기를 타고 와 버릴까봐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 금방 할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아빠와 새엄마는 내가 뻐꾸기와 제비 어쩌구 하는 모습을 보자 약간 어이가 없는 듯했다. 아마 알 수 없는 모녀의 대화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기는 그것은 어쩌면 우리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엉뚱한 발상이긴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른들이 기다리신다는데 어쨌든 죄송해요. 그리고 저기… 오늘 솔직한 말씀 고마웠어요. 전 할머니댁으로 가서 하루 자고 내일 엄마 집으로 갈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가 “내가 데려다 주지”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새엄마가 아빠를 저지했다.

“내가 데려다 주고 올게요. 위현이도 다시 데려와야 하고… 위녕 가자.”

사람의 삶은 참 이상하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극적으로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변화무쌍한 삶.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기쁨만으로도 혹은 슬픔만으로도 살 수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또 하루를 이겨낼 힘을 얻나 보다. 할머니네 집 앞에서 나는 새엄마에게 말했다.

“위현 외가 식구들에게 인사 전해주세요. 그분들은 정말 저에게 잘해주셨어요.”
 
새엄마의 눈에 눈물이 다시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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