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IT 명품 소비자' … 서비스로 활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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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보기술(IT) 리더로 꼽히는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IT산업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상철 광운대 총장과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사장, 임주환 한국통신학회 회장은 6일 본지 미디어IT팀 고윤희 부장 등 취재진과 서울 조선호텔에서 만나 IT산업의 장래를 놓고 4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들 리더는 경쟁력이 있다는 IT마저 중국과 선진국(일본)에 끼인 '샌드위치'신세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잘 갖춰진 IT 인프라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 개발만이 IT의 활로를 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우리 국민은 IT 제품이나 서비스를 한발 빨리 소비하는 'IT 명품 소비자'인 만큼 서비스 개발 여지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IT를 의료.자동차.신발 등 모든 산업은 물론 생활서비스 분야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선 정부나 기업.대학이 자신의 울타리에서 나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만남은 본지가 IT산업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내다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진대제="반도체.컴퓨터.PC.이동통신.초고속인터넷은 지난 수십 년간 IT산업을 키운 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다 할 사업이 보이지 않는다."

▶임주환="IT 경쟁력을 가늠하는 정보화 지수(네트워크 지수)를 봐도 그렇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해 한국의 정보화 지수 랭킹을 2005년보다 다섯 단계 낮춰 19위로 매겼다. 그럼에도 인터넷TV(IPTV) 등 새로운 성장산업은 정부와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으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다. 소리만 요란하고 결실을 보는 게 없다."

▶이상철="우리나라 IT산업은 기로에 섰다. 과거의 틀을 깨고 새로운 산업의 잣대로 IT를 봐야 할 때다. IT는 이미 가정이나 생활현장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관련법에 묶여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또 IT 위기론이 새로운 게 아니며 잠복했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나 기업이 그동안의 성장세에 안주해 미래성장엔진을 찾는 데 게을리한 결과라는 것이다.

▶진="2003년 초 삼성전자 사장으로서 외부 강연을 할 때마다 중국이 4~6년 뒤에는 따라오니 빨리 신수종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그 위기가 닥치자 모두 당황하고 있다."

▶이="한국 IT는 기술에선 일본 등 선진국에, 시장과 코스트(인건비)는 중국에 뒤진다. 그동안은 제법 먹거리를 잘 찾아 이만큼 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한 게 없다.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임="IPTV와 같은 새로운 IT 서비스가 부처 간 갈등으로 늦춰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가 못하는 IPTV를 32개국이 이미 서비스하고 있다. 2~3년 전에 IPTV를 도입했으면 국내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내수와 수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을 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반도체업체 인텔은 한국에 세운 연구개발(R&D) 센터를 철수키로 했다. 세 사람은 정부가 힘을 쓸 분야에선 제대로 하지 않고 민간 사업자에게 맡겨야 할 부분은 규제라는 장벽으로 둘러친 탓이라고 진단했다.

▶진="정통부 장관 시절 12개 외국 IT 기업의 R&D 센터를 유치했다. 최근 이들이 슬슬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고 있다. 중국으로 몰려가는 외국 기업들을 잡으려면 교육.의료.금융 분야에서 더 많은 메리트를 줘야 한다."

▶이="정부는 외국인 전용 학교나 병원이 국내에 지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마치 외국인들에게만 큰 혜택을 주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인천 송도 신도시의 경우 지금보다 빨리 개방했더라면 더 많은 외국 기업이 들어왔을 것이다. 기술도 달리고 시장도 좁은 데다 인건비까지 비싼데 어느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오겠나."

이들 석학은 그동안 쌓아온 IT산업의 성과가 거품은 아니라고 했다. 잘만 꿰면 IT는 여전히 한국의 성장동력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려면 인재 육성과 벤처 키우기에 다시 팔을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리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는 또 다른 '명품'이다. 일본이 디지털 카메라 시제품을 만들면 한국에 먼저 뿌린다. 한국 소비자들이 쓰면서 인터넷에 좋다 나쁘다는 소감을 띄우면 일본 업체는 이를 반영한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뿌린다. 이런 명품 소비자 덕분에 한국은 세계적인 IT 실험무대(테스트 베드)로 자리 잡았다."

▶임="IT 미래에 대한 해답도 '정말 우수한' 소비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들을 잘만 활용하면 세계적인 IT 명품을 개발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해답도 나온다. 우리의 인재 교육도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포항공대 졸업자들이 의대에 편입학하는 상황 아래선 미래가 없다."

▶진="구글 같은 세계적인 벤처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우수한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스프레이 앤드 프레이(spray and pray)라는 말이 있다. 돈 뿌리고 기도하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묻지마 투자다. 벤처 투자가 묻지마식으로 가니까 죽을 기업이 죽지 않는다. 반면 살아야 할 기업에는 돈이 가지 못한다. 기술을 믿고 서슴없이 투자하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들은 IT산업 비중이 큰 통신산업에도 일침을 가했다. 통신시장에도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제 통신회사들도 변해야 산다. 차세대 무선 서비스인 와이브로(휴대 인터넷)를 하더라도 단순히 음성이나 데이터를 주고받는 서비스에 그치지 말고, 부가 서비스를 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포도밭과 양조장.유통망이 없어도 와인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포도주를 팔 수 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PC 하나로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와야 한다."

▶임="통신회사도 IT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IBM이나 GE처럼 KT나 SK텔레콤도 통신회사가 아니라 유통회사로 변신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원호.김원배.이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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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이사사장
[現]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석좌교수
[前] 정보통신부 장관 제9대

1952년

[現] 광운대학교 총장(제7대)
[現]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회장

1948년

[現]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前]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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