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으로 경제 살리기/「신경제 100일 계획」에 담긴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무기력·침체 “매우 심각상태” 진단/경기자극 최우선… 「임금」 논란 예상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후 첫특별담화 주제로 「경제」를 선택한 것은 이문제의 해결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사회개혁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국민과 기업이 불안속에서 자신감을 잃었을때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실망으로 급전직하,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뿌리째 흔들어놓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7대 과제로 집약
김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임기 5년간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일정표(신경제 5개년계획)를 제시하고 이를 심도있게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최초의 1백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올 상반기중에 추진할 「신경제 1백일계획」을 7대과제로 집약해 발표했다.
7대과제로 집약된 1백일계획은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론과 함께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지금까지 논의되던 것보다 훨씬 큰 비중을 두고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새정부 출범이후에도 정부는 계속 『물가를 부추길 우려가 있는 총수요확대정책은 펴지 않겠다』고 밝혀왔으나 이번 특별담화에는 『총수요가 워낙 위축되어 있어 이를 다소 확대해도 물가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란 판단으로 선회하면서 총수요확대를 위한 재정·금융정책을 펴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돈을 풀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정부방침이 결정됐다는 얘기다.
○정통적 부양정책
이같은 방향선회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경기침체가 쉽사리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상황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제까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논의돼 온 경기활성화 방향이 수출제조업 또는 설비·기술투자 등 경쟁력강화에 필요한 특정분야에 대한 제한적인 것이었던 반면,특별담화를 통해 확정된 내용은 여러가지 수사로 포장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재정투자 및 통화공급의 확대를 통한 「정통적인 경기부양대책」이며 이에 따른 물가부담은 이른바 고통분담론과 행정력으로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안정기반의 유지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물가보다는 경기회복이 우선이라는 「선택」이다.
「대국민 특별담화」라는 형식을 통해 정부는 모든 경제주체에 대해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나섰다.
예컨대 정부는 경상경비를 억제하고 공무원봉급을 동결할 것이며 대기업은 주력업종으로 전문화하고 중소기업에 하청대금을 제때 주고,근로자들은 산업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임금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권위주의 체제아래서 정부의 계획·지시·통제에 의해 주도됐던 이른바 「정부 혼자서 하는 경제」에서 「국민이 함께하는 경제」로 탈바꿈하자는 것이 김 대통령이 주창하는 「신경제」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공무원들이 7월부터 3%인상으로 돼있는 임금인상까지 동결을 감수하는 것은 분명히 고통분담에 속하겠지만 기업이 하청대금을 법대로 주고 경제외적 비용을 투자로 돌려쓴다는 것도 고통분담인지는 국민들이 납득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국민들이 기대하는 기업 또는 기업주의 고통분담은 오히려 경제력집중의 완화나 금융실명제를 통한 조세형평의 추구,불로소득의 차단 등 제도개혁적인 것들일 것이다.
○내용 나빠질수도
따라서 이같은 제도적 개혁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태도가 밝혀지지 않고 더욱이 최근 이같은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는 것은 정부의 「고통분담론」의 기반을 심각히 흔들 우려가 있다.
이번 특별담화로 나타난 정부의 생각은 경기부양을 위해 기업의 활동을 확실히 밀어주어야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개혁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면서 『경기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개혁부터 먼저 해나가자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선경기활성 후개혁」의 방향이 「고통분담」을 호소한 국민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우리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데 목적을 두고있는 신경제계획이 집권초기의 가시적 성과에 매달려 건설·소비 등 내수확대에 치우칠 경우 경제성장률은 높아질지 몰라도 내용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물가안정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이뤄져야 함에도 경기부양에 급급한 나머지 구태의연한 「특별관리」 「행정지도」 등으로 묶겠다고 나서는 것은 경제의 자율화에 기본적으로 역행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한종범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