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hrain 폭우' … 베어벡호 난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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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못 들면 옷 벗겠다 …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아시안컵에서 4강에 못 들면 사퇴할 수도 있다"고 말했던 핌 베어벡 감독이 15일 바레인전에서 패한 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자카르타=연합뉴스]


배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물이 새어 들어오고, 선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댄다.

'베어벡호'가 난파 직전이다. 아시안컵에서 최악의 졸전으로 예선 탈락 위기에 몰린 축구대표팀에 대한 질타와 핌 베어벡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빗발친다.

가장 큰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 그는 무모할 정도로 순진했고, 상대를 너무 쉽게 봤다.

베어벡은 예선 1차전 사우디전(1-1)에 나갔던 멤버 중 무려 6명을 바꿔 바레인전에 나섰다. 경기에 패한 뒤 그는 "결승전까지 염두에 뒀다. 그러려면 여섯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경기 사이사이에 따로 훈련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던 경험 많은 선수들을 투입했다" 고 말했다. 그는 바레인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경기를 훈련의 연장으로 여겼다.

결과는 조직력의 붕괴로 나타났다. 두 명이 바뀐 포백 수비진은 상대의 끊임없는 침투 패스에 허둥댔고, 두 골을 헌납하다시피 했다. 특히 경험이 필요한 중앙수비수 자리에 강민수.김진규 등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가 기용된 것은 의외였다. 이들이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면서 수비라인은 물론 팀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또 소속팀에서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한 이호(제니트)는 지나치게 흥분했고, 동료가 받기 힘든 패스를 남발했다.

초반 선제골을 넣은 뒤의 경기 운영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경기가 끝나가는 양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임했다. 수비는 백패스, 미드필더는 횡패스, 공격진은 단조로운 측면 공격으로 일관했다. 평소 훈련 때도 베어벡은 '오로지 측면 공격'이었다. 전술이 없는 것인지 알고도 안 하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축구인이 많았다.

이천수의 자세도 눈에 거슬렸다. 바레인전 전반 추가시간에 염기훈이 왼쪽 측면에서 프리킥을 하려고 하자 달려와서 자신이 차 버렸다. 직접 슈팅할 각도가 아니어서 왼발을 쓰는 염기훈이 문전으로 감아 올리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다.

졸전의 멍에를 쓴 이동국은 "감독이 페널티박스에서 나오지 말라고 해서 고립됐다"며 감독의 용병술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베어벡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아시안컵 단장으로 온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사령탑 교체 문제에 대해 지금 얘기하는 것은 이르다. 귀국해서 의논할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상 경질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4강에 들지 못하면 물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던 베어벡이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라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자카르타=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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