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달라지고 있다(새바람 개혁바람: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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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당·의원 불안한 “체질개선”/국회개방·민원실 설치 겉으론 활기/재산 공개로 조심스러워진 몸가짐
회기가 아니면 빈집처럼 스산하던 국회가 청사안팎으로 부산스럽다.
국회는 15일 외무통일위를 시발로 16일 국방위를 연데 이어 상임위를 줄줄이 열 예정이다.
국회가 민자당의 새로운 방침대로라면 적어도 외형상이나마 연중무휴 민의의 전당이 될 전망이다. 물론 민자당이 국회운영의 활성화 방침을 계속 지켜나갈지,국회가 민의의 전당이 될만큼 내실있게 국정을 심의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겠지만 변화의 조짐만은 확연하다.
이런 가운데 국회경내도 개방됐다.
국회경내 개방이후 본관앞 잔디밭과 뒤쪽 윤중로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살아있는 민의의 전당을 감지하게 해준다. 바리케이드가 없어진 정문을 큰 맘먹고 들어왔다가 넓은 잔디밭을 보고 가슴이 훤히 트이는 시원함에 눈치없이 소리를 질렀다가 경비경찰의 호각소리를 듣고 계면쩍어하는 사람도 있다.
○“가진게 죄냐” 푸념
그러나 국회가 제모습을 찾아가는 가운데 의원들은 「재산공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처음 재산공개방침이 알려지면서 민자당내 일부 민정계·공화계 의원들은 『돈 가진게 죄냐』 『없는 놈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왔다』 『이게 무슨 인민재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막상 재산공개를 공식 확정한 10일 당무회의는 30분만에 「반대의견없이」진행됐다. 일부 이의가 있었으나 소극적 입장으로 알려졌던 김종필대표가 가로막고 나서 『내가 먼저 하겠으니 다음주까지 하라』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자 대부분 의원들의 입은 얼어붙고 말았다.
의원들은 목소리를 낮춰 『여론때문에 내놓고 반대할 수도 없고…』라며 한숨까지 짓는다. 권력과 손잡고 적당히 살아가던 만년 여당의원들은 마치 김영삼대통령에게 하이재킹 당한 기분인 듯하다.
재산공개를 준비하는 의원들은 이미 공개한 고위당직자들의 재산내역을 구해보면서 「어떤 수준에서 어떤 내용을 털어놓아야 하는가」를 탐색중이다. 비공개로 등록된 국회의 개인별 재산기록을 찾아 추가해야 할 항목들을 챙기기에 바쁘다.
한 의원은 비공개등록당시 「실거래가격」으로 등록한 내용을 줄이기 위해 「공시지가」(실거래가의 70∼80%정도)로 환산하는 한편 그 사이 감가상각된 승용차의 중고가격을 문의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감시
어떤 의원은 이미 일부 재산을 처분,공개대상이 아닌 「현금화」했다는 소문도 있으며,지역구에 건물을 지으려다가 포기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의원들은 『내 재산은 얼마안되고 대부분 회사재산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믿어주겠느냐』며 전전긍긍이다.
야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 이기택대표가 가장 먼저 재산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15일 최고위원회의는 한발 더 나아가 『민자당의 재산공개는 엉터리다. 우리는 법안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 따라 보다 철저히 재산을 공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의원들은 불만속에 재산공개를 하면서도 이제 뒷거래나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치부하는 시대가 지났음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경향이다. 한 중진의원은 『재산공개는 실사과정이 없더라도 모든 사람의 감시대상에 들어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공직자의 몸가짐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의 대여비판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내각인선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이 싸잡아 비난하기보다 『통일원장관과 안기부장은 좋지만 총리와 시장(김상철변호사)은 문제가 있다』고 분별해 지적했다.
당내 문제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은 「김심」을 부르짖는 주류를 무조건 찍어주기보다 전 대표의 마음을 파는 선거운동행태를 비판한 듯한 투표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런 민주당의 건전한 시시비비자세가 국정논의의 차원을 한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여의도 민자당사는 겉과 속이 완전 달라지고 있다. 당사입구를 위압적으로 지키던 전경과 닭장차가 사라진대신 당사건물 1층에는 「국민의 소리 듣는 곳」이란 민원실이 새로 생겼다.
그러나 그안에서 사무처요원들은 15일부터 불안한 심정으로 사직서를 써서 사무총장에게 냈다. 당분위기가 싸늘해지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안받고 당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정당의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사무직원의 절반을 감축해야 한다.
감축대상중 일부는 국·공영기업체로 전업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개중에는 졸지에 실업자가 될 사람도 있다. 전업해도 생경한 기업조직으로 들어가 적응하는 것이 고민거리다.
○달라지는 민자당사
사무처직원들 역시 「조직의 이상비대」와 「정당운영비 감축」의 필요성을 인정하기에 「감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속앓이는 국회의원이상이다.
돈안드는 정치를 위해선 선거제도를 고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정당조직부터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의 소산이다.
여야가 정치부패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낼 국회의원선거법 등 개정협상에 본격 착수하면 변화의 양상과 폭은 훨씬 다양하게 나타날지도 모른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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