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교육 혁명을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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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해 기획 '세계는 교육혁명 중'은 들춰보기 민망한 우리 교육 현실을 남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교육은 두말할 것 없이 국가를 밀고 나가는 메인 터빈이다.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고, 나라의 장래가 교육에 달려 있다. 그 터빈을 비교해 보니 우리 실정은 심각한 지경이다. 우리보다 저 앞에 가거나 우리를 맹렬히 쫓아오는 나라의 교육은 가스터빈인데 우린 아직도 증기터빈이다. 이웃 나라는 힘찬 회전음을 내고 있는데, 우리는 소리가 약하고 쿨럭거린다.

교육이 위기이고, 그래서 나라가 위기다. 오죽하면 외국에 나가 있는 학자들까지 정부에 당장 범국민 대책기구를 만들라고 나섰겠는가. 한국의 교육정책은 한국인의 저력과 가능성을 고갈시키고 있으며, 교육의 실패는 한국의 미래에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고 그들은 경고한다. 한국의 교육은 사회에 보탬을 주는 시민을 육성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으며, 개인의 야심을 좇는 지식계급만 양산하고 있다는 그들의 지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한국 교육은 정치를 닮았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뒷다리를 잡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TFT LCD .선박 세계 1위에, 휴대전화 3위, 철강. 자동차 5, 6위인 경제규모 12위의 나라. '실미도'가 '반지의 제왕'과 경쟁하고, 아시아에 한류(韓流)를 일으킨 나라. 올림픽에서 10위 안팎을 유지하는 나라. 그런 한국이지만 정작 이런 경쟁력의 토대가 되는 교육은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 교육은 좌초 직전의 표류하는 돛단배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 원인은 교육정책이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민주화 시대를 지나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경쟁국가들의 교육은, '죽의 장막'이니 하던 중국조차 세계화시대의 승리 전략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입체적인 계획을 실행 중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아직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 가시지 않은 민주화 시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념의 논리가 힘을 쓰고 있다. 교육정책의 가장 큰 구호는 공교육의 정상화와 입시경쟁의 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도 좋지만 언제까지 거기에 매달릴 건가. 교과서에선 세계화를 가르치면서 정작 스스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교육당국이 안타깝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교육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러다가 언제 추진력을 소진할지 모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흐리멍텅한 정책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율과 경쟁과 개방이라는 세계화 시대의 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제로 전환해 공급자들에게 경쟁심을 불어넣고, 그 결과 수요자들이 경쟁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율 경쟁 때문에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가 걱정된다면 부자들이 기꺼이 부담하게 만들어주고, 대신 그 예산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등록금 비싼 명문 사립고를 가고 싶어 하는 저소득층의 우수한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주면 된다. 그것이 제대로 된 평등 아닌가.

이젠 교육에도 새로운 리더십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교육정책의 눈높이를 확 바꿔야 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예방하지 못하고 사회 탓 하는 근시안적 정책은 안 된다. 의대와 한의대로만 우수 인력이 몰리고 있다고 걱정하면서 싱가포르 이상 가는 의료산업을 생각하지 못하는 우물안식 정책은 없어야 한다. 우리도 교육혁명을 생각할 때다.

이덕녕 사회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