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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엔론과 伊 파마라트… 부정기업 처리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엔론은 말라 죽어갔지만 파마라트는 이탈리아 정부가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사설에서 이탈리아의 거대 식품업체인 파마라트의 회계 부정 스캔들과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 스캔들을 이렇게 대비했다.

파마라트와 엔론 모두 ▶투명성 결여 ▶숨겨진 부정과 채무 ▶역외 세금 도피처 이용 ▶회계.행정.증권감독 당국의 부실한 관리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파멸을 불렀다. 그러나 기업의 파산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크게 달랐다. 미국과 유럽의 상반된 문화 때문이다.

엔론은 수익을 부풀리고 채무를 숨기는 등의 회계 부정이 밝혀진 지 몇 주 만에 무너졌고, 2001년 말 결국 파산했다. 당시 엔론은 연간 1천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거대 기업이었다.

4천5백여명의 직원은 직장을 잃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아서 앤더슨도 몇달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퇴출됐다.

반면 이탈리아 정부는 대형 파산기업의 재건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을 만들어 파마라트 구제에 적극 나섰다. 안토니오 마르차노 이탈리아 산업장관은 "노동자 1천명 이상에 채무 1억유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이 법령이 주주나 경영진이 아니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유럽에서 정부의 개입없이 월드컴.엔론.아서 앤더슨과 같은 규모의 기업이 그대로 붕괴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프랑스.독일.벨기에는 지난 몇년새 거대 기업의 파산을 경험했지만, 이들 국가의 정부는 정부 보증과 대출 등의 혜택을 줘가며 기업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WSJ는 덧붙였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개인적으로 구제에 나선 독일의 건설그룹 필립 홀츠만이나 프랑스의 기계제작그룹 알스톰이 모두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정부는 2001년 9.11 테러 사태로 위기를 맞은 항공산업과 가격경쟁력 악화로 고전 중인 철강.섬유 산업에 지원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고 WSJ는 지적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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