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 의혹 수사 '검찰 내부에 미묘한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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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면서 검찰 내부에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수뇌부뿐 아니라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선거 수사에 대한 '실체 규명론'과 '자제론'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12일 춘천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범죄라는 전제가 없는 검증 작업을 검찰이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불분명한 범죄 혐의에 대해 장기간 수사하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전날에는 "검찰이 선거에 너무 깊숙이 휘말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고 말했다. <본지 7월 11일자 1면>

이는 "의혹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규명할 것"이라고 강조해 온 현재 수사 지휘 라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이달 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선거 관련 고소.고발과 수사 의뢰가 느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적당주의나 소극적 자세는 안 되고 원칙을 따르면 당사자의 승복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검찰의 선거 관련 수사는 가속도를 냈다. 이 후보의 재산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를 지휘하는 김홍일 3차장검사는 12일 "신속하게 실체를 규명한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검찰 지휘부는 고심하는 분위기다. 대검 간부들은 13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의혹 보고서를 국정원이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나라당이 김만복 국정원장을 수사 의뢰한 사건을 배당하는 문제로 장시간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관계자는 "이 후보와의 형평성 차원에서는 특수부에, 사건의 성격과 현재 공안부가 박 후보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공안부에 배당하는 게 맞는다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후보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건 배당을 놓고 고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검 공안부 측은 "앞으로 5개월여 동안 선거 질서를 유지하려면 일선 검찰의 공안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의혹사건 수사에서 빠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고위 간부들은 최근 대검을 찾은 한국계 미국인 대니 전 판사에게 "대선 과정에서 터지는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해 미국 검찰은 어떻게 대처하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검찰 출신인 전 판사는 "미국은 명예훼손의 경우 대개 민사 소송으로 다투며, 재판을 하는 데 2년 정도가 걸려 선거를 앞두고 검찰 수사가 논란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정치권에서 고소를 하는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주장과 "검찰이 신(神)이 아닌 이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 과거 의혹 수사는 자제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붙고 있다.

수사가 조기에 실체적 진실을 완벽히 밝히지 못할 경우 수사 과정에서 근거도 없는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 특정 후보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경계론이 약간 우세하다. 이른바 '김대업 학습 효과'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부풀려지면서 결과적으로 이회창 후보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대검 공안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낸 박만 변호사는 "범죄가 있다면 법대로 수사하되, (범죄 단서가 없어) 수사에 한계가 있는 의혹 폭로에 검찰이 일일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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