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정책 방향(김영삼정부의 과제: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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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합의 바탕 정부독주 지양해야/전향적 대북정책 관련부서 이견부터 조율/미일 중심 외교서 탈피 다자체제 적응시급
새 정부의 통일정책은 엄청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외교·안보를 담당할 주요 직책에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학자들을 모두 앉힌 것부터 이러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을 받아들이는 부처의 관리들은 이것이 기존의 관료체제를 불신,흔들어놓기 위한 포석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더군다나 안기부와 통일원이 이제까지의 그 어떤 정부에서보다 전향적인 성향을 가진 인사를 부서장으로 받아들여 대북정책 전반에 걸친 재검토가 이루어지게 됐다.
그러나 통일정책이나 외교정책은 사후에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틀을 잡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어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여론수렴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대북문제나 외교문제에서 별다른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인수위를 가동하는 동안이나 취임이후에도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 정상회담만은 김 대통령을 비롯해 통일관련 인사들이 기용될 때마다 의욕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른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다양한 협력이 이루어지는 등 세계는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으며 민족은 어느 동맹국이나 사상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같은 민족이라는 원점에 서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김일성주석을 만날 것을 제의했다.
더군다나 정부내 대북정책과 관련된 정종욱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나 한완상 통일원부총리도 모두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한 부총리의 경우 연내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 중요하고 효과적인 수단임에 틀림없지만 새 정부의 지나친 강조는 자칫 「수단」을 「목적」으로 전도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노태우 전 대통령정부가 지나치게 남북정상회담에 집착함으로써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밀리기만 해 보수세력에 명분을 제공하고,전향적인 남북관계 추진에 오히려 제동이 걸렸던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신임외무에 기용된 한승주장관도 교수시절 칼럼을 통해 한국 외교가 지도자의 위신을 떨치는데 이용됐음을 지적했었다. 이러한 권력자의 독주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외교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에 앞서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장기적인 구상을 정리하고 국민적인 합의,최소한 정부내의 입장 정리라도 이루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노태우정부에서는 대북정책이 정부내의 강경·온건파의 갈등,미국의 입김에 의해 우왕좌왕하고 서로 비난하는 가운데 표류해왔다. 따라서 새 정부는 가장 먼저 정부내 대북정책의 기조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권이익과 국가이익이 분명히 정리될 때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
외교분야 역시 통일정책과 함께 전반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냉전시대의 국제질서는 무너지고 이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미소 양극체제가 붕괴되면서 유엔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이 유엔의 핵이라 할 안보리 개편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 새 질서 구축과정에서 우리가 방관자로 있을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의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거둔 한국외교의 양적 확대는 이러한 우리의 의지를 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전략적이며 체계적인 구상」없이 사안별로 임기응변해온 이제까지의 외교행태로는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까지처럼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좀더 접촉범위를 넓히고 4강밖으로 다각적인 관계 확대를 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관심 영역도 환경·인권·자원·인구 등 다양한 분야로 넓히고 양자관계나 한국문제만이 아니라 다자관계와 제3세계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국제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미 세계는 기존의 정치문제에서 통상문제를 중심으로 한 외교로 변했다. 이것은 우리가 미국의 안보 보장만을 기대고,미국은 동북아에 자신들의 전진기지를 확보하는 것으로 만족하던 시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지역별로 다자협의체가 구성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진전과 별도로 블록화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으며 우리가 속한 아시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외교의 최대과제였던 안보역시 다자체제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폭좁은 시각에서 외교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전체를 조감하면서 실리적인 경제·안보외교를 펴가는 국제적인 시각조정이 시급하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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