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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새로운 남북 경협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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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북한 당국 차원의 경제 교류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7월 7일 개성공단 안에 있는 남북경협협의사무소에서 남측의 남북교류협력지원협의회와 북측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 간에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 이행을 위한 세부합의서’가 체결됐다.

남측이 8000만 달러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현물 차관으로 공급하고, 북측은 그에 상응하는 지하자원을 제공하는 일종의 물물교환 거래다. 7월 25일에는 폴리에스테르 단섬유 500t을 실은 첫 배가 인천항을 떠나 남포항으로 간다. 경공업 제품 생산을 위한 우리 측 기술지원단은 다음달 7일 북한의 공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측은 올해 안에 8000만 달러의 3%에 해당하는 아연괴·마그네시아 클링커 등의 지하자원을 상환키로 했다. 나머지 97%는 연리 1%에 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한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새로운 경협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지난 시기 정부 차원의 대북 경협은 남쪽의 경제적 지원과 북쪽의 정치적 대응 형태였기 때문이다. 쌀 차관 제공은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 비료 지원은 매년 남북대화를 개시하는 대가 등으로 인식되었다. 이번 물물교환 방식은 북쪽의 정치적 대응이라는 반대급부가 아니라 경제적 대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방식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북측은 경공업 원자재 지원을 요청했지만, 우리 측이 지하자원 제공과 연계함으로써 이번 거래가 성사됐기 때문에 남북 경협의 새로운 방식을 개척했다고 할 만하다.

 북한 입장에서도 우리 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북한은 올해부터 주민들의 경제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평양 시내의 구호도 대부분 경제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공업 원자재를 받아 북한 내 경공업 공장을 돌릴 수 있음은 물론 의류·신발·비누 등 생필품을 주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안에 확산되고 있는 시장화 현상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생필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 시장에 풀고 있다. 전력과 원자재 부족으로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역할은 더욱 커지는 반면 정부 차원의 통제력은 약화돼 북한 당국은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구사하기 어려웠다. 북측은 이러한 필요성으로 금번 거래에 적극성을 보였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이번 거래가 상호 간에 경제적 필요성이 접목된 새로운 경협 방식이라고 할 때 다소의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 경협에는 인도적 지원도 있을 수 있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기왕에 경제적 목적의 거래라면 좀 더 따지고 계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머지 97%의 대금 결제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의 지하자원이 경제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과 지하자원 개발을 위해 별도의 투자를 해야 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대금 결제가 이뤄질 수 있을 정도로 경제성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 선행됐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고받는 거래가 정확하고 새로운 경제 교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새로운 거래 방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새로운 경협 방식을 지속 가능하고 남북한이 상생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이 필요하다. 첫째, 향후 북측의 상환 내용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물물 거래를 진행하는 것인 만큼 대금 결제 과정 등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해야 한다. 둘째, 거래는 정확해야 한다. 만일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에 경제성이 없다면 다른 방식의 대금 상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남북한은 얼굴을 붉힐 수도 있고, 등을 돌릴 수도 있지만 거래를 위해 다시 타협하면서 서로의 신뢰는 쌓여 갈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새로운 경협 방식일 것이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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