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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청정 휴양지 찾고 있나요? 열목어와 함께 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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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피서지의 조건은 둘이다. 일단 시원해야 한다. 그리고 깨끗해야 한다. ‘아직 그런 곳이 남아 있을까’ 싶다면 전문가에 물어보자. 바로 열목어. 시원하지 않으면 못 살고, 깨끗하지 않으면 못 사는 1급수 지표생물이다. 열목어가 사는 곳이라면 일단 믿어도 좋다. 강원도와 맞닿은 경북의 오지, 봉화 백천계곡이 딱 그런 곳이다.

<봉화>글=김한별 기자< <idsta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천연기념물 74호’ 봉화 백천계곡 “물이 맑고 오염되지 않아야 하며 한여름에도 수온이 20도를 밑돌아야 하고…물에 풀린 산소가 9ppm이 넘어야 하며 둘레는 숲이 울창하여 햇빛의 양과 수온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 민물고기 백 가지』 중에서)”

 

수정같이 깨끗한 백천계곡 물.

‘민물고기 박사’로 불렸던 고(故) 최기철 서울대 교수가 밝힌 열목어 생장조건이다. 까다롭다. 시베리아·북한 정도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은 드물다. 섬진강 상류 전북 진안군 백운면과 낙동강 상류 백천계곡(경북 봉화군 석포면)이 남방한계선이다. 특히 백천계곡은 열목어 서식지로는 세계 최남단.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 74호이자 생태보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거기다 주변 숲은 금강송이 울창한 천연림 보호구역. 이 때문에 백천계곡에선 야영·취사는 물론이고 물놀이도 안 된다. 가능한 건 오직 하나, ‘걷기’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수십 년간 ‘잡티’ 하나 없는 청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베일 속에 감춰져 있던 백천계곡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 면 사무소에서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정비한 게 계기가 됐다. 대형 안내판이 들어섰고 위험 구역엔 로프도 설치됐다. 초행길에도 헤매지 않을 만큼 정비가 되자 눈 밝은 등산객들이 하나 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첫 여름이다.

 
금강송이 하늘 가려 낮에도 캄캄 백천계곡 트레킹은 국도변에서 3㎞쯤 들어온 현불사에서 시작한다. 등산로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담장을 끼고 돈다. 왼편으로 콸콸, 계곡물이 기운차게 흐른다. 그 오른편은 태백산 남동 능선에서 내려오는 조록바위봉이다. 이 조록바위봉과 뒤쪽 달바위(월암), 그 오른쪽 별바위(진암) 등 세 산이 모여 번(番)을 서듯 계곡 입구를 지키는 톡특한 산세. 그리고 그 사이로 계곡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西出東流). 이런 독특한 지형 때문에 마을 주민 간에는 이 곳이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천재지변·전란으로부터 안전한 열 곳의 땅) 중 한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온다.

 20여 분쯤 오르니 차량 통행을 막는 차단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인적이 끊기고 오롯이 자연만 존재하는 곳, 잠시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머물 수는 없는 곳, 백천계곡의 속살이다. 차단기를 돌아 들어간다. 사람 흔적이라곤 빽빽한 나무 터널 사이로 임도 한줄기가 고작이다. 일제시대 때 금강송을 실어내기 위해 뚫은 길이란다. 대낮이건만 하늘이 캄캄하다. 끝 모르고 치솟은 원시림이 햇빛을 가렸기 때문이다. 초입엔 단풍나무, 위로는 금강송 천지다. 짙은 나무 그늘 덕에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걷는데도 서늘하기만 하다.

 산색에 취해 정신없이 걸은 지 10여 분, 물소리가 부쩍 크게 들린다. 계곡물이란 좁게 발원해 하류로 가며 세를 넓혀가는 게 보통. 한데 백천계곡은 어찌 된 영문인지 위로 갈수록 수량이 더 느는 듯하다. 문득 그 속에서 뛰놀고 있을 열목어가 궁금해진다.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열목어는 환경부가 지정한 특정 보호 어종이다. 허가 없이는 잡을 수 없다. 특히나 천연기념물인 백천계곡에선 열목어가 사는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돼 있다. 가만히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열목어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아무리 서식지라도 여름엔 열목어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시원한 바위 돌 틈에 숨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 돌에 앉아 있자니 금세 몸이 저릿저릿해진다. 볕이 안 드는 데다 물과 돌에서 뼛골까지 시린 냉기가 올라와서다. 에어컨 냉기쯤은 비할 것이 아니다.

 15~2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나타났다. 좁고 통통한 몸통에 작은 머리, 황갈색 피부에 점점이 박힌 자색 반점. 열목어다. 갓 부화한 손가락만 한 놈부터 어른 팔뚝만 한 놈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열목어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몸 빛깔이 바닥 자갈과 같은 황갈색인 데다 워낙 움직임이 빨라 눈으로 좇기가 쉽지 않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잠시나마 ‘귀하신 몸’을 직접 본 걸로 만족이다.

 내처 오르니 삼거리 표지판이 나온다. 계속 오르면 태백산 부쇠봉, 오른쪽으로 가면 칠반맥이골이다. 등산화를 갖춰 신었다면 모를까 가벼운 산책 차림이라면 돌아서는 것이 좋다. 자칫 욕심 부리다간 ‘얼음 계곡’ 금강송 그늘 아래서 누린 호사가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전체 계곡 길이는 약 15㎞, 현불사에서 삼거리 표지판까지는 약 3.3㎞.

TIP

■찾아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제천IC로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탄다. 태백을 지나 35번 국도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시내에서 현불사 비석을 끼고 우회전하면 된다.

■먹거리=현불사 비석 인근에 모리가든이 있다. 직접 뜬 청국장과 재래된장을 섞어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백반이 5000원. 콩잎을 된장에 박아 삭혔다 새콤달콤하게 버무린 반찬도 맛나다. 054-672-6446.

■여행정보=봉화군청 새마을문화관광과(054-679-6394)나 백천계곡을 지키는 주민 모임 ‘대정회’ 전 회장 이석천씨(054-672-6609)에게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트레킹 여행 전문 승우여행사(www.swtour.co.kr)에서 최근 당일치기 여행 상품을 내놨다. 매주 토요일 아침 전세버스 편으로 서울을 출발, 백천계곡을 돌아보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점심식사를 포함해 성인기준 3만3000원. 02-720-8311.

■주의 사항=백천계곡은 문화재법에 의해 보호받는 천연기념물이다. 열목어를 보겠다고 물에 들어가선 절대 안 된다. 특히 여름엔 감시원 2명이 상주하며 순찰을 도니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 열목어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차라리 현불사로 가라. 연못에서 기르는 열목어를 실컷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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