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쉼터 방황 10대들에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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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학교나 가정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가출한 청소년들이 유해환경 때문에 비행에 물드는 것을 막고자 서울YMCA가 지난해 10월말 문을 연 「청소년 쉼터」가 방황하는 10대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쉼터」가 문패를 단지 1백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원만치 못한 가족관계, 체벌 등 교사의 비인격적 대우, 진학문제로 인한 절망감 등을 견디지 못해 가출했다가 이곳을 찾은 청소년들만 해도 약 5백명. 청소년들의 70%이상이 가출충동을 경험한다는 각종 조사결과라든가 새 학기가 시작되는 3∼4월이나 9∼10월에 청소년 가출이 급증한다는 통계에 비춰볼 때 봄철에 접어들면서 그 이용차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쉼터」를 찾는 가출청소년의 대부분은 14∼16세로 자퇴 등의 형식을 빌려 제도교육권에서 밀려난 경우가 특히 많다는 상담원 강미경씨. 그들은 몸과 마음을 쉬며 7명교사의 도움으로 상담·심리검사·진로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앞날을 설계한다. 강씨는 『청소년들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갖가지 문제행동을 보이는 것은 「내가 죽을 지경이니 제발 좀 살려달라」는 비명인 셈인데 부모나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그 원인을 알아보고 도와주는 대신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유급이나 정학처분을 내리면 그 학생이 학교에서 계속 말썽부리기 쉽다며 자퇴를 강요하는 예가 많은데, 그 바람에 갈곳이 없어진 청소년들은 고립감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끼리끼리 어울려 심각한 탈선행동과 상습적인 가출을 되풀이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 청소년들을 사탕으로 감싸며 바로잡고자 최선을 다해야할 부모들조차 『저 아이 때문에 다른 형제자매들까지 물들면…』 『저 아이만 아니면…』하는 식의 무분별한 말로 자녀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경우도 흔하다며 아쉬워한다.
「쉼터」가 위치한 서울 가회동 일대의 청소년들도 이미 4천6백명 가량 드나들며 공부방·탁구대 등의 시설과 좋은 영화 및 음악감상·집단상담·심리검사·초청강연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원래 「쉼터」가 청소년들의 가출을 예방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청소년 문화공간 역할도 겨냥하고 있을뿐더러, 가출 청소년들이 「쉼터」에서 닷새 가량 머무르는 사이 상담원이나 건강한 일반 청소년들과 함께 바둑두고, 노래하고, 음식도 만들어 나눠먹는 생활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효과도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
원래 이 「쉼터」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시작됐으나 갈 곳이 없어 찾아오는 소녀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가출한 소녀들은 남자보다 유해업소를 거치면서 치명적인 비행의 늪에 빠질 우려가 더욱 높다』고 말하는 서울YMCA 한명섭 간사.
그는 『지역별로 소규모 쉼터들이 계속 늘어나 순간의 충동적 가출이 치명적인 비행의 계기가 아니라 자신의 앞길을 찾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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