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통령 집무실의 분열 장식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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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것은 아직 있을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져 있을까. 작은 칠판 크기의, 아마 아크릴 판이었을 것이다. 그 위에는 노사모의 희망 저금통 여러 개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염원하는 간절한 편지들, 그리고 유세 당시의 감동적인 사진들이 장식돼 있었다. 임기가 반쯤 지나던 두 해 전, 전문가 간담회 참석차 들렀던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의 한 구석이었다.

 그것은 승리의 화려한 추억이자 가슴 뭉클거리는 감격의 표징(表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의 영원한 박제(剝製)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슬픔이었다. 적어도 내겐 다리 휘청거리는 충격이었다. 일국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개 집단 우두머리의 상징을 본 듯한, 아득한 절망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대선은 노무현 후보 진영에서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선거 일 년 전만 해도 그는 청문회 스타 의원 출신의 전직 장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까지 오르리라는 것을 지지자들조차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내 경선 승리와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냈고, 마침내 본선에서도 골리앗처럼 여겨지던 상대를 누르고 말았다.

 그 환희, 그 영광. 그러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가 온몸, 온 마음으로 겪어냈어야 할 고통과 눈물겨운 역경의 고비들. 그동안 가슴 절절했을 천대받던 시간들과 이 악물고 참아냈어야 할 좌절의 순간들. 생업까지 포기하면서 그를 믿고 따라 준 이들의 열정적 지지가 없었더라면 그는 진작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그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집무실 한편에 굳이 그들을 향한 기억의 찬란한 표식을 세워 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만의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럴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2002년 12월 당선 확정 직후의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거침없이 말했다. “저의 당선을 위해 뛰어 주시진 않은 분들이나, 저를 반대한 많은 국민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저를 지지한 분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저를 반대하신 분들까지 포함한 모든 분들의 대통령으로, 심부름꾼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그 순간 나는 벅찬 마음으로 TV 화면 속의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비록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그라면 대통령으로 믿고 따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지난달 말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가진 마지막 회견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쳤다. “친구든 적이든 모든 분들이 평안하시길 빕니다(I wish everyone, friend or foe, well).”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서의 그런 기원보다는 당선 직후의 그 약속이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지난달 중순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진행된 PBS 방송의 시사대담 프로그램인 ‘찰리 로즈쇼’에 한 시절을 풍미했던 미국 외교정책의 거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닉슨·포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포드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성향과 배경은 달랐지만 다음 대통령에게 보내는 조언은 한결같았다. “귀 기울이고(Listen!), 포용하라(Engage!).” 그러나 이미 ‘우리’ 대통령은 그 충고를 당선되자마자 스스로 그러겠노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크게(大) 통합하는(統) 지도자(領)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사안마다 편 가르고 기회마다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래서 궁금해진다.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도 그 장식판은 그대로 있을까. 진작 추억의 창고로 보내졌어야 할, 그러나 집무실에 우뚝 서 후보 시절 가열찬 투쟁의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있었을 그 장식판.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박사,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