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온대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살아생전뿐 아니라 죽어서도 그렇다. 추종자가 적지 않았고 일부에게 그는 ‘우상’이 됐다. 물론 반대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정희 18년’을 끔찍해 하고, 그를 미워하는 이도 많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강력한 리더에 대한 열광이었든, 아니면 독재정치로 인한 상처든 그 모든 게 잦아들고 냉정한 역사의 잣대로 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래도 그 시절 경제성장과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청계천 여공들의 눈물, 도시 빈민의 비참한 삶, 농민들의 희생을 부인할 수 없지만 한국이 5000년 가난에서 벗어난 것 또한 객관적 사실이다.

 때론 이런 공상을 해본다. 만일 박정희가 다시 살아와 지금 집권한다면 어찌 될까?
 또다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걸 세워 해마다 8~9%씩 성장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헬기 타고 가다 “임자, 저기에 제철소 지어 봐”라고 지시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기업들한테 “당신은 뭐 만들고, 당신네는 뭐에 주력해 보지”라고 밀어붙일 수 있을까. 산림녹화가 됐든, 국산품 애용이 됐든,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이 됐든, 아무튼 뭐든 대통령이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대로 사회가 따라줄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커 버렸다. 그땐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온 나라가 축제를 벌였다. 지금은 삼성전자 혼자 500억 달러 넘게 수출한다. 그땐 먹고살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들이 눈물 속에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지금은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겠다며 해외로 나간다. 과거에는 군인과 관료가 가장 똑똑한 집단으로 평가받았다. 지금은 그런 얘기하면 다들 웃는다. 한마디로 세상은 변했다.

 과거 세대의 희생과 노력은 정당하게 평가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식 성장전략과 사고방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사실도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한다.
 6월 26일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대학총장 152명의 이른바 ‘토론회’가 끝난 뒤 “대통령이 기업인들 불러다 훈시하면 장관은 옆에서 장단 맞추고, 참석자들은 고개 조아리는 모습이 박정희 때와 너무나 똑같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워하면서 닮는 건가? 하지만 박 정권 때도 대학총장들을 불러다 집단 훈시를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토론회’는 기록으로 남아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요즘 모두 “교육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부가 바뀌지 않는 한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70~80년대처럼 교육부가 쥐고 흔들면서 교육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건 대학도 알고, 지각 있는 교사도 알고, 학생과 학부모도 다 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전인교육과 평준화’라는, 교육현장에선 허울만 남은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열심히 되뇌고 있다.

 대학생이 된 자식을 애 취급하면 반발하게 마련이다. 몸이 커졌는데 작은 옷을 주면서 거기다 몸을 맞춰 입으라면 아우성이 터지는 게 당연하다. 의무교육을 시키고, 문맹률을 0%로 만들고, 우수 인력을 키워내기 위해 교육부가 과거에 했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는데 언제까지 과거의 틀로 미래를 옥죌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학에 자율을 주면 교육이 망한다고? 20여 년 전 통행금지 없앨 때도 걱정하는 사람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통행금지가 옳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개혁·개방·자율을 통한 경쟁력 확보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언제까지 역주행을 계속하려는가.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