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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북한에도 숱한 은어가 숨어있다.
열린 사회에서와 달리 주민들은 툭하면 곁말을 통해 신세타령을 늘어놓고 김일성 부자를 비롯한 특권층의 월권을 비꼬기 일쑤다.
때문에 북한사회의 은어는 해학보다는 한이 서린 「직선적」 대항어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만큼 은어에 비친 북한사회의 모습도 팽팽하고 그늘져 있기만 하다.
이 가운데 뭐니뭐니해도金부자에 얽힌 은어가 가장 두드러진다 하겠다.
집권초기 김일성을 지칭하는 용어는 「김마두(마적두목) 동무」 「조선 히틀러」 등 섬뜩한 것이 많았다.
중·소 등거리외교를 풍자한 「양다리 동무」 「왔다 갔다 동무」도 한때 식자층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단골 호칭.
지금은 성격·외모를 빗댄 「후라이 6단」 「꽝포쟁이」(대포) 「약방 감초」 「큰 곰」 「너구리」 「대사구」(메기) 등 다소 순치된 호칭이 많다고 전해진다. 또 「송기떡 장군」 「콩떡 장군」 「위대한 원수」 「수령은 짧고 인민은 영원하다」 등은 김의 「이밥에 고깃국」 정책을 꼬집을 때 늘 들먹여진다는 게 귀순자들의 얘기. 이밖에 서방외교관들은 김을「Golden Boy」(동상을 금박 했다는 뜻) 「궁전 속의 예티」(히밀라야에 산다는 전설상의 은둔설인)라고 입방아를 찧는다고 한다.
김정일의 경우 어리다는 뜻의 「햇내기」 「풋내기」, 외모를 흉내낸 「배불뚝이」 「똥자루」(신장이 1m58cm임) 「밤송이」 「고슴도치」(주체 머리라 해 머리를 짧게 깎은 것) 등이 회자되고 있다.
또 굽이 높은 구두를 좋아하고 스피드를 즐겨 「고도」 「고속」으로도 불리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약어인 「친지동」은 소문나 있을 정도.
당정간부는 「볼셰비크」 「시어미」 「개똥모자」(레닌 모를 쓰고 건들거린다) 「공타하 동무」(타도돼야 한다) 「앵무새」(지시사항을 되풀이) 「쌍수책상」(책상머리만 지킨다) 등으로 곧잘 꼬집힌다.
직맹 등 각종 조직의 남녀위원장은 각각 「수맹장」 「암맹장」으로, 당 세포비서·사회안전부·국가보위부 요원은 「통짜군」(통째로 밀고한다) 「냄새」 「쎄리」 「독사」 등으로 찍혀있다.
반면 비당원 등의 경우는 「깜빡이는 촛불」 「까치는 까치끼리」 「뻥까우리」(촌놈의 뜻) 「이등인민」(북송교포에 비교한 자신들의 처지) 등 푸념조의 표현이 수두룩해 좋은 대조를 이루고있다.
사상교양 집회와 관련해선 「콩사탕」 「푸줏간」이 각각 공산당·당 기관을 뜻하고, 「용광로」 「아궁이」는 교육장소를 일컫는다.
또 카를 마르크스는 「크리이막스」 「가락국수」, 변증법적 유물론은 「뻔덕뻔덕 유물론」, 의무적인 영화관람은 「벌잠」이라 한다. 식생활 은어는 배를 채웠다는 뜻의 「과업완수」와 「가족식당」(밥 먹을 때 밖에는 집에 없다는 뜻) 「영양제」(고깃국) 「무 삼 형제」(무로 만든 세 가지 반찬) 「냄새 배급」(당 간부의 결혼식 피로연) 「오토바이」(설사) 등 특히 다양한 편.
성과 관련해선 연애와 정조는 각각 「사랑사업」 「당의 것」, 지조 없는 여자는 「재떨이」 「엎어 말이」로, 바람난 여자는 산책길을 뜻하는 「유보도 대장」이라 불린다.
「갔다 왔다 동무」(전과자) 「빵깐」 「큰집」(교화소) 「구멍치기」(뇌물수수) 「칠 센티 짜리」(담배) 「똑댁이」(시계) 등도 「꾼」들에겐 보편화된 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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