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의 지존' 페더러 강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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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가 우승 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다. 얼굴이 트로피에 반사돼 마치 자신에게 입을 맞추는 것 같다.[윔블던 로이터=연합뉴스]


2003년 6월 24일(한국시간).

로저 페더러(스위스.당시 세계 5위)는 영국 윔블던 테니스 남자단식 1회전을 힘겹게 통과했다. 세트 스코어는 3-0이었으나 세 차례나 서비스 게임을 뺏겼고, 3세트에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따냈다. 상대는 이형택(삼성증권)이었다. 수줍음 많던 22살 청년 페더러의 윔블던 연승 기록은 이렇게 출발했다.

2007년 7월 9일. 흰색 정장 차림으로 센터코트에 들어선 세계 1위 페더러는 윔블던의 주인처럼 당당했다. 페더러는 남자단식 결승에서 라이벌 라파엘 나달(스페인.세계 2위)을 3-2(7-6<9-7>, 4-6, 7-6<7-3>, 2-6, 6-2)로 꺾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자신의 윔블던 연승 기록을 34로 늘리면서 5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윔블던 5년 연속 우승은 1976년부터 80년까지 비외른 보리(스웨덴)가 세운 이후 27년 만에 나온 기록이다. 보리는 이날 윔블던 센터코트의 로열 박스에 앉아 페더러의 경기를 지켜봤다. 여전히 매혹적인 금발을 늘어뜨린 보리는 "페더러는 잔디코트의 예술가다. 약점이 없다"고 말했다.

페더러는 메이저 대회 통산 우승기록도 11회로 늘려 보리, 로드 레이버(호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피트 샘프러스(미국)가 가진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기록(14회)도 눈앞에 다가왔다.

페더러의 가장 무서운 라이벌은 바로 이날 결승 상대였던 나달이다. 나달은 지난해와 올해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잇따라 페더러를 꺾어 페더러의 그랜드슬램을 저지했다. 상대 전적도 여전히 나달이 8승5패로 앞선다.

페더러의 텃밭인 잔디코트에서도 나달의 강력한 톱스핀과 빠른 발을 이용한 스트로크 플레이가 통한다는 사실이 페더러에겐 부담이다. 나달로서는 마지막 5세트에서 두 차례나 페더러의 서비스 게임을 따낼 찬스를 놓친 것이 뼈 아팠다. 페더러는 서비스 에이스를 24개나 기록하며 노련하게 고비를 벗어났다. 나달의 에이스는 1개뿐이었다.

결승전을 해설한 주원홍 삼성증권 감독은 "페더러가 일방적으로 이길 것이란 예상이 깨졌다"며 "나달의 강력한 톱스핀이 페더러의 백핸드를 무력화했고, 예리한 패싱샷으로 페더러의 어프로치를 막았다"고 설명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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