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술(하)|작년부터 되살아난 소주 소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소주 한 병을 사는데도 요즘은 선택의 폭이 꽤 넓어졌다.
예전에는 모양부터 천편일률적인 2홉들이 병 소주 한가지에다 똑같은 25% 알콜 농도에 맛도 그게 그거였지만 요즘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우선 2홉들 이를 살 것인지 아니면 팩 소주나 네모 병의 관광소주를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기존의 희석 식 소주 말고도「비선」(진로·91년),「보해골드」(보해·92년),「고우」(금 주·91년)등 다양한 알콜 농도와 향취를 지닌 혼합 식(곡물)소주가 애주가들의 선택 폭을 크게 넓혀 놓았다.
게다가「1도1주」규정마저 철폐돼(92년 1월)웬만한 도회지 대형 슈퍼에 가면 8도의 다양한 소주를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소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댓병」이라고 불리는1·8ℓ들이 백화수복이 고작이었던 청주도「청하」(백화·86년)「국향」(동·90년)등 이 냉 청주 시장을 일으켰고「매취순」(보해·89년)의 성공도 고급과실주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조니워커」나「시버스리걸」한잔 마실 기회에 흐뭇해하던 애주가들이 이제는 백화점 수입품코너마다 널려 있는 수백 가지 외제 양주·와인·샴페인을 항상 가까이 할 수 있게 됐다.
제품 다양화만큼이나 주종간 부침도 두드러져 3년 전부터 소주가 사양길로 접어드는가 했더니 작년부터 매기가 되살아나고 있고 10여 년간 불황을 모르던 맥주가 이제는 안 팔린다고 난리다.
90년대를 맞은 술의 이 같은 변전을 이해하려면 주류시장 환경을 급변시킨 두 가지 요인을 새겨 두는 것이 유익하다.
그 하나는 주류시장 자율화바람이고 또 하나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다. 전자는 주종 다양화와 관련이 있고 후자는 맥주의 퇴조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불황을 모르던 소주가 입맛 고급화, 저도 주 선호경향에 밀려 사상 처음으로 연간 절대소비량이 줄어든 것이 90년.
무 사카린 소주를 앞다퉈 내 놓는 등 각 사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90, 91년 두 해 연속 하향곡선을 그리던 소주소비가 작년부터 되살아나기 시작, 작년엔 전년대비 5·7%의 증가율을 보였다.
91년7월(알콜 농도 제한폐지)부터 줄이어 등장한 혼합 석 소주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은 덕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애주가들의 가벼운 호주머니사정이 맥주 집보다는 소주 집을 찾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82년 이후 매년23∼30%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 온 맥주시장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작년 한해 출고량이 전년보다 9·3%감소, 11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양주는 90년대 들어서 수요가 급팽창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충족할 국산양주가 개발되지 않고 있는 것이 주류업계의 가장 큰 당면 과제 중 하나다.
말만 국산이지 1백%외국산주정으로 만든「패스포드(OB씨그램·84년)(베리 나인·86년)「VIP」(진로·84년)대신에 국산주정을 일정 비율 섞은「디플로매트」(두산·87년)「다크호스」(진로·87년)「VAT69」(진로·91년) 등이 대체 품으로 잇따라 개발됐지만 대부분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도중하차했다.
국산 진·럼·보트 카 등도 무수히 등장했지만 호기심에 따른 초기의 반짝 수요를 지속하지 못하고 대부분「끼워 팔기」술로 전락했다.
시판 초기에는 그런대로 인기를 모았던「쥬니퍼」(진로·80년)「씨그램진」(오비 씨그램·80년)「하야비치」(롯데주조·79년)「로진스키」(진로·80년)「삼바25」(백화양조·81년) 등이 이 같은 길을 걸었다.
맥주에 완전히 밀려 버린 막걸리는 87년 이후 5년째 수요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서울지역은 유독 쌀 막걸리「서울동동주」(서울 탁 약주 제조협회)를 중심으로 작년부터 수요량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막걸리 업계에 가느다란 재기의 희망을 그나마 던져 주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 술 시장은 우리 국민경제규모와 나란치 성장을 거듭, 연간 3조원(업계추정)의 외형을 갖추게 됐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위스키주정 한가지, 외국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변변한 우리 전통 술 한가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소득이 늘고 주류산업 자율화가 진전됨에 따라 주종다양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겠지만 앞으로 쏟아져 들어올 외국 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 술보다는 경쟁력 있는 술「딱 한가지」가 더욱 절실한 때다. <홍승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