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여성 지점장시대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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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주택은행에 일시에 2명의 여성 지점장이 새로 탄생해 은행가의 부러움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84년 장도송씨(현재 조흥은행 주부대학 학장)가「국내 은행여성지점장 제1호」를 기록한 이래 뒤를 잇는 여성 지점장이 한 사람도 없다가 91년 주택은행 노주현씨가 제 2호(국책 은행으로는 제1호), 그리고 최근 역시 주택은행 신대옥·김춘자씨 2명이 남성 동료들을 제치고 초고속 승진하는 바람에 1세기에 가까운 국내 은행 사에서「최다 여성지점장 시대」를 연 것이다.
『워낙 뜻밖이어서 지난 4일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인사발령 사실을 알았을 때 거의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서울 상일동 지점장이 된 김춘자씨(53). 보수성이 유독 두드러진 금융계는 남녀차별의 벽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터에 여성이 불이익은커녕 오히려 우대 받은 처지 여서 남성 동료들이『여자로 태어날걸』하고 부러워한다며 웃는다.
김 씨와 동시에 서울 목동지점장이 된 신대옥씨(42)는 인행 동기들보다 무려 5년 가량 승진이 빠른 셈. 『제 자신뿐 아니라 4천여 주택은행 여성 동료들, 좀더 크게는 20만 명에 가까운 전체 금융계 여성들과 전국의 직장 여성들을 위해서도「진짜 유능한 지점장」이 되고 싶습니다』며 자신의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동료·후배들, 특히 여성 후배들의 기대가 더욱 용기 백배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주택은행 최초의 여성대리로 출발, 91년 지점장이 돼 주택은행 여성책임자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노주현씨(49·현재서울 상계북 지점장)는 지난 77년 대리로 승진했을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여성은 더 이상 직장의 꽃이 아니다」는 말로 화제를 모았던 장본인. 이들 세 사람 모두 미혼이다.『그래서 밤샘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기혼여성도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실제로 이들 3명은 대개의 은행 출장 소장들이 월 평균 수신고 50억원, 지점장들이 1백억 원 정도의 실적을 올리는데 비해 출장소장으로서 이미 2백억 원 정도의 능력을 발휘했으니 웬만한 남성들 세 몫은 족히 해냈다.
「남녀에 대한 역 차별이 아니냐」는 은행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 인사를 단행한 김재기 행장.
그는 앞으로도 전체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의 사기를 높이고 남녀 차별 없는 인사정책을 전체 은행 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능력 있는 여성들은 과감히 승진시킬 것을 다짐함으로써「여성 은행원들의 가능성에 대한 꿈」을 불어넣고 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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