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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푸틴 탓만 하기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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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때와는 분명 달라졌다. 5일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14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되기를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기원했다. 유치에 성공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기가 더욱 드세질 것에 대한 일부의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그 정도의 걱정쯤은 기우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 타도돼야 할 군사정권도 없고 우리의 국력도 커졌다. 81년과는 달리 한국이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서는 것을 비웃는 나라도 없다. 서울올림픽 유치를 적극 방해했던 북한마저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는 협조적이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실패했기에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

 평창의 꿈이 좌절되면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위선과 허위의식이 있다. 평창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때문에 진 건 사실이다. 푸틴은 과테말라로 날아가기 직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낚시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과의 뒷거래가 있었음 직하다. 물량공세도 엄청났다. 푸틴은 소치의 경기장 건설 등에 120억 달러를, 대회 운영비로 15억 달러를, 환경파괴에 따른 자연보호 예산으로 1억5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이 푸틴을 뒷받침했다. 가스프롬은 세계 최대 가스기업이며 시가총액 세계 3위, 이사회 회장은 푸틴의 후계자로 유력한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가 맡고 있다. 그런 가스프롬이 막강한 자금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휘둘렀다.

 김진선 강원지사는 “IOC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과연 무엇인지…”라며 눈물을 흘렸다. 잘츠부르크를 앞세워 평창·소치와 함께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섰던 오스트리아의 총리도 “정치권력과 자금력이 모든 것을 좌우했다”고 개탄했다. 국내 언론도 일제히 평창의 실패를 러시아의 힘과 자금 동원력 탓으로 돌렸다. 그런 지적은 옳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연 떳떳했는지 돌이켜보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은 국제축구연맹(FIFA) 위원들에게 엄청난 선물공세를 했다. 처음엔 카메라와 시계·전자제품 등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나중에는 자동차와 값비싼 호화 해외여행, 미녀가 제공됐으며 돈까지 동원됐다. FIFA 집행위의 모든 위원들은 한국과 일본의 매수 대상이 됐다 (데이비드 옐롭, 『누가 월드컵을 훔쳤나』)”. 이런 과정을 거쳐 2002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88올림픽은 전경련이 주도해 경제인이 유치했다”고 했다(정주영, 『이 땅에 태어나서』). 당시 정부는 ‘망신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대기업 회장들이 직접 뛰어 올림픽 유치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재벌 총수들이 기업 인맥과 정보망만 활용했을까. 자금력이 동원됐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우리는 정당한 경쟁을 했는데 러시아는 돈과 강대국의 힘을 동원해 신성한 국제 스포츠계를 오염시킨 것인가. 이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사고방식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번 겨울올림픽 유치전에서 한국이 러시아와 함께 과열 경쟁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평창이 3250만 달러, 소치는 3000만 달러, 잘츠부르크가 1300만 달러를 썼다고 보도했다. 남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도 그렇게 깨끗한 것만은 아니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