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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美 대선 다크호스, 배우 출신 프레드 톰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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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는 것 없이 예쁜 사람이 있다. 미국 대선 정국에 돌풍을 몰고 온 프레드 톰슨은 후자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톰슨에 대해 알게 되면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고 말한다. 올 8월 만 65세가 되는 톰슨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대선 주자 1,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래스머선 리포트’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공화당 예비선거 유권자 지지율 조사에서 톰슨이 27%의 지지율로 24%인 루디 줄리아니를 앞서고 있다. 3위로 밀려난 존 매케인이 9월에 출마를 포기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있다.


상원의원 시절 톰슨은 생생하고 거짓 없는 할리우드가 종종 그립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워싱턴을 그렇게 만들 기회를 그는 붙잡을 수 있을까? [AP=연합]

톰슨은 이번 달 내로 출마선언을 할 예정이다. 출마선언을 하면 인기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는 이미 탄탄한 구조물을 이루고 있다.

그의 폭발적 부상의 배경에는 미국의 ‘스타 문화(celebrity culture)’가 자리 잡고 있다. 연쇄살인범도 일단 유명해지면 팬클럽이 생긴다. 톰슨은 스타다. 인기 TV시리즈 ‘법과 질서’에서 아서 브랜치 검사역을 맡았다. 극중 이미지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검사다. 큰 키(195.58㎝)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그가 제2의 레이건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는 이미 10여 년 전에 나왔다. 지난달 20일 톰슨은 자신의 레이건 이미지를 굳히려는 듯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예방하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협상가이며 복잡한 문제를 쉽게 풀이해 중후한 바리톤 목소리로 전달한다. 입장이 명확하지만 그로 인해 편이 갈리지 않는다.

그의 지지자 중에는 골수 공화당, 특히 기독교 우파가 많다. 그들은 루디 줄리아니의 보수주의 선명성이 부족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혜성같이 톰슨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보수주의연합에 따르면 톰슨은 상원의원 재직 시 각종 투표에서 86% 정도 보수적으로 투표했다. 톰슨은 불법이민에 강경한 입장이고 낙태, 배아줄기세포 연구, 동성 간 결혼에 반대한다.

톰슨은 신앙심이 두터운 것 같지는 않다. 기독교 우파 지도자인 제임스 도브슨도 처음에는 “톰슨이 충분히 기독교적이진 않은 것 같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톰슨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위대한 보수주의 대통령인 레이건도 교회에는 열심히 다니지 않았다.”

톰슨이 걸어온 인생길도 매력 덩어리다. 그는 중고차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톰슨은 공부도 잘 못했다. 좀 맹랑한 구석도 있었다. 미식축구 경기 중 그가 부상한 것처럼 보여 코치가 달려갔더니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관중의 반응이 어떤가요?”

톰슨의 첫 번째 부인은 세러 린지다. 톰슨이 16세일 때 1년 연상인 린지가 혼전 임신을 했다. 린지는 철없는 톰슨과는 대조적으로 우등생이었으며, 미인대회에 나가는가 하면 지역 신문에 칼럼도 쓰는 재원이었다. 이들은 야반도주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린지네 식구들의 가족회의에서 결혼 승낙을 받았다. 이때 판사였던 세러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러가 이 녀석에게서 뭔가를 발견했다면 이 녀석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야.”

‘평강공주’ 린지와 결혼한 톰슨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린지는 톰슨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톰슨은 자전거 조립공, 신발 세일즈맨으로 일해 번 돈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멤피스주립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밴더빌트 법과대학원에 진학한다. 1967년에는 테네시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72년에는 테네시주 공화당 상원의원인 하워드 베이커의 재선 운동에 선거매니저로 채용된다. 그 인연으로 톰슨은 73년 상원 워터게이트 위원회 특별검사가 돼 닉슨 전 대통령의 도청 진상조사에 참가하게 된다. 베이커가 던진 “대통령은 무엇을 언제 알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닉슨 대통령 하야로 이어지는데 이 질문은 톰슨의 작품이라고 한다.

85년 우연한 기회에 톰슨은 배우가 된다. 그 후 그는 ‘붉은 10월’ ‘다이하드 2’ 등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앨 고어가 부통령이 되면서 94년 테네시주 상원의원 보궐선거가 실시되자 톰슨은 참신한 정치신인 이미지를 발산하며 청바지 차림에 빨간 트럭을 타고 테네시를 누빈 끝에 당선되고 96년에는 재선된다. 그는 2002년 3선에는 도전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의 상원의원 재직 시 기록은 모두 테네시대학교에 기증됐다. 톰슨의 정치인생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 3월 테네시 주의회 공화당의원 60명이 그의 출마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자생적 지지자의 열광 속에 톰슨은 순식간에 유력 대선 후보가 됐다.

그가 막상 출마를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그가 몰고 온 태풍은 대지진을 동반하게 될까, 아니면 산들바람이 될까? 이미 검증은 시작됐다. 우선 그에게는 CEO, 주지사, 시장 경험이 없다는 게 지적된다. 상원에서 정부관계위원회 위원장(1997∼2001)도 맡았지만 10년 상원의원 생활 동안 별로 한 일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톰슨은 ‘똑똑하지만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지자들에게 게으른 톰슨은 역시 게을렀던 레이건을 연상시킬 뿐이다.

그의 20년 로비스트 활동이 그의 대선 가도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톰슨은 “검증은 이미 94년, 96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끝났다”는 입장이다.

시시콜콜한 비판도 많다. 상원의원 선거유세 도중 빨간색 픽업트럭은 유권자들이 보는 앞에서나 타고 다녔지, 유권자들이 안 볼 때는 좋은 차로 갈아타는 것을 봤다. 이데올로그이기도 했던 레이건에 비해 정치적 정열이 없어 보인다. 부시 대통령에 이어 또 다른 남부 출신을 후보로 내세우는 것은 공화당을 지역당으로 만드는 것이다 등등.

이성 문제는 종종 정치인들의 발목을 붙잡곤 한다. 톰슨은? 그의 여성 편력에 대해 묻자 톰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독신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많은 여자를 쫓아다녔고 또한 많은 여자가 나를 쫓아다녔다. 나를 쫓아다닌 여자들은 종종 나를 붙잡는 데 성공하곤 했다.”

톰슨의 선거전에는 변호사이자 언론 전문가인 부인 제리 켄뿐만 아니라 그의 전처까지 나선다. 옛 여자친구인 컨트리 음악 가수 로리 모건, 사교계의 여왕 조제트 마스바커 등도 적극 돕기로 했다.

톰슨호(號)는 선거전의 격랑에도 순항할 것인가? 남은 변수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의 출마 여부, 그리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유독 버락 오바마에 약한 모습 등이다. 지금까지 그를 찾아온 기회는 모두 거머쥔 톰슨…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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