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계.신구의 전화기 척 보면 ‘인물’ 알겠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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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15면

화제 속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 돈과 욕망이 넘실댄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한 가지. 사채업계의 양대 큰손 봉 여사(여운계 분)와 독고철(신구 분)의 대조적인 전화기 모델이다.
봉 여사의 거실에 놓인 전화기는 이탈리아제 앤티크. 대리석 몸체에 아치형 손잡이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팍팍 풍긴다. 화이트모던의 클래식 가구 속에 화룡점정 같은 역할이다. 놓여 있기만 해도 “여긴 돈 많은 상류층 집이야”라고 과시하는 것 같은.

반면 독고철의 전화기는 1960년대 TV를 다시 보는 듯한 복고풍이다. 거추장스러운 다이얼식에 투박하고 남루하다. 방안 구석구석 널린 옛날 지도·주판·도자기도 대청마루 한옥과 어울려 골동품 느낌이다. “돈은 많아도 검소한 노인이라오”하고 속삭이는.

세트 디자인을 담당한 SBS 아트텍 서정필 디자이너는 “장태유 감독과 상의해 각 캐릭터에 맞춰 세트·소품을 설정했다”고 소개했다. 봉 여사는 사채업자라도 악덕 인물은 아니라 집 안에 고급 상류층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고. 화려한 거실은 호텔 응접실을 참조했고 고급 가구를 협찬받았다. 반면 독고철은 벌 만큼 벌었어도 돈의 허망함을 아는 노인이다. 집 외관은 가회동 한옥에서 찍고, 안방 세트엔 시대물 소품을 가져다 고풍스럽게 꾸몄다.

말하자면 드라마 소품에도 클리셰(판에 박은 진부한 표현·장치)가 있다. 과시형 상류층은 앤티크 소품, 숨은 알짜 부자는 빈티지 골동품. 또 다른 대조 인물군인 이차연(김정화 분)과 서주희(박진희 분)도 오디오로 대비된다. 봉 여사의 손녀 차연 방에 놓인 진공관 오디오는 3000만원대지만 은행원 주희의 CD 컴포넌트는 30만원대다. 소품이 인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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