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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중앙일보 새해특집] 시속 300km 고속철 시대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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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시청 앞에서 부산시청 정문 앞까지 가는데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은 무엇일까. 본지 취재팀이 각종 교통수단을 비교.분석해본 결과 고속철도가 가장 경제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속철도=경제적'이라는 평가가 굳어지면 기존 교통시장은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겪을 전망이다. 항공.고속버스.승용차 이용객은 대거 고속철도로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또 여유가 생긴 철로에 화물열차를 더 투입하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물류난이 대폭 완화된다. [편집자]

'출발지=서울시청, 목적지=부산시청'. 이 구간을 가장 경제적으로 주파한다는 것이 취재팀의 목표다. 비교대상은 소형 승용차.우등고속버스.새마을호.항공기.고속철도다. 역.공항.터미널에서 택시.지하철.버스 등 연계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감안했다. 이동 시간만으로는 항공기가 3시간5분~3시간20분으로 역시 가장 짧았다. 고속철도는 3시간50분, 새마을호 5시간40분 안팎, 승용차는 6시간30분, 고속버스는 7시간 정도였다.

소형 승용차의 경우 고속도로 통행료와 기름값으로 5만8천1백20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름값은 4백여 주유소의 평균적인 휘발유의 ℓ당 가격(1천3백원)과 고속도로.시내도로 주행 연비를 바탕으로 계산했다.

우등고속버스를 타면 버스요금에 택시.지하철 요금이 추가돼 2만8천9백~4만8천5백원이 필요하다. 편도요금 3만7천원인 새마을호는 총 3만9천3백~4만5천1백원, 항공편은 인상된 요금 6만6천5백원과 공항이용료 등 7만5천1백~9만9천5백원이 든다.

이에 비해 고속철도는 4만9천9백원의 요금(잠정) 등 5만2천2백~5만8천원이 든다.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만 따지면 고속버스와 새마을호가 가장 싸고 항공편이 가장 비싸다. 고속철도는 승용차로 가는 것과 비슷한 돈이 든다. 하지만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반영하면 어떨까. 결과는 확 달라진다. 왜냐하면 시간도 돈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교통비용을 조사할 때 시간손실을 반영한 분석법을 흔히 사용한다

'시간 값'을 제조업체 근로자의 임금 수준인 시간당 1만원으로 가정하자. 이동하는 데 5시간이 걸리면 교통요금 이외에도 시간값 만으로 5만원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고속철도와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의 총비용은 8만8천8백67원이 든다. 모든 교통수단 중 가장 경제적이다. 우등고속버스나 새마을호보다 6천~1만원 정도 저렴하다.

비즈니스맨이 많이 탄다는 것을 가정해 시간당 2만원의 임금을 적용해 보자. 고속철도의 경제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고속철도의 비용은 12만5천5백33~13만4천6백67원이다. 15만원 전후의 새마을호나 18만원대의 승용차와는 비교할 수 없다.

완전 개통되는 2010년 이후엔 경제성 차원에서 본 고속철도의 경쟁력은 한층 강화된다. 서광석 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항과 목적지 사이의 시간대별 도로 상황, 도로가 막힐 확률, 사고 확률 등을 감안한다면 철도에 비해 항공기가 더 불리하다"고 말했다.

시간과 요금을 모두 감안하면 고속철도에 승객이 몰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선 파리~리옹 테제베(TGV) 동남선 개통으로 항공 승객의 50%가 TGV로 옮겨갔다. 일본에서도 신칸센 개통 후 도쿄~나고야 구간의 항공편은 완전 중단됐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일단 고속철도 개통에 맞춰 김포와 대구.포항.부산.목포 노선의 운항 횟수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특히 서울~부산 노선은 40~50% 감축할 계획이다.

고속버스 업계는 더 난감해 한다. 고속철도 때문에 고속버스 승객은 약 30%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물류에는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고속철도가 여객 수송을 많이 흡수해 주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개통 이후엔 30% 가량의 선로 여유가 생기고 여기에 화물열차 60편(하루 기준)이 추가 투입된다. 부산 신선대나 감만항 등에서 경기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ICD)까지 컨테이너 화물열차만 12편이 매일 새로 운행된다.

이에 따른 직접적인 물류비 절감 효과만 1조8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승용차 이용이 줄어 고속도로 소통이 원활해지는 것까지 따지면 연간 물류비 절감만 2조4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란 게 교통개발연구원의 분석이다.

요금 최대한 싸게…대중교통 추구 통학·출퇴근 40%대 할인

고속철도의 요금 정책은 한마디로 '박리다매'다. 최대한 싸게 책정해 승객을 많이 끌어들이겠다는 것이 철도청의 방침이다. 이를 통해 고속철도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 초기에는 달랐다. 정부는 1992년 고속철도 건설 방침을 발표하면서 "건설비만도 수조원대가 들어가는 만큼 고가의 고급 교통수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요금정책의 전환은 철도구조개혁과 관련한 철도산업의 구조변화 때문이라고 철도청은 설명한다. 철도청은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된다. 현재는 정부로부터 연간 2조~3조원대의 보조를 받지만 내년부터는 보조금을 받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공사화 이후엔 수익을 많이 내야 한다. 그 전제조건이 승객의 저변확대다. 저가 정책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철도청은 이를 위해 다양한 할인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출퇴근.통학 등 정기적으로 고속열차를 이용할 경우 40%대의 정기할인을 해줄 방침이다. 고속철도와 일반철도를 환승해 이용할 경우 일반철도 운임의 20%, 10명 이상의 단체에 대해서도 10%의 할인을 검토하고 있다.

또 30일 전 예매는 최고 20%, 15일 전 예매의 경우 10% 할인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2010년 2단계 공사까지 20조원 가까이 들어가는 건설비의 회수다. 요금을 싸게 할수록 투자비의 회수기간은 길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번 싸게 잡은 요금을 나중에 신축적으로 높이기도 어렵다. 철도요금은 공공요금으로 분류돼 있어 철도공사가 되더라도 자율적으로 요금을 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저가 정책에 따라 손실을 볼 경우 결과적으론 정부가 일정 부분 보조할 가능성이 크다.

◆ 특별취재팀=강찬수.정철근.장정훈.권근영(정책기획부), 안장원(조인스랜드), 오종택(사진부)기자

<ktx@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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