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출항 3개월 만에 북극해의 얼음덩어리에 발이 묶여버렸다. 배 안에 갇힌 채 일년 반 동안 표류하자 선원들 사이에선 반란의 조짐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번져나간다.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던 선장과의 잦은 마찰 끝에 항해사 알바노프는 배를 버리고 얼음 황무지를 통과해 남쪽의 프란츠 조세프 랜드로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원래 그는 혼자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선원 13명이 그를 따르기로 한다.
"변덕스러운 극지의 환경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알바노프는 살아남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자세한 지도와 별다른 정보도 없이 단지 썰매와 카약에 의지해 수백㎞를 행군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더욱이 그를 따르기로 한 이들은 리더십으로 통솔되고 동료애로 뭉친 집단도 아니었다. 그의 일기에는 "동료들의 앞날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부담이 되는데도, 그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는 식의 불평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식량과 무기, 생존에 필요한 장비들을 훔쳐 도망치는 배신자마저 생겨났다. 하나 둘씩 대원들이 죽어나가고 실종되는 90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결국 살아남은 이는 단 두명이었다. 알바노프만이 희미한 생존의 탈주로를 뚜렷한 의식을 갖고 더듬어 냈을 뿐 다른 이들은 당장의 추위 앞에서 배의 돛대를 땔감으로 쓰는 등 앞날을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알바노프의 기록은 극한의 체험을 낭만적인 영웅담으로 미화한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더 극적이다. 한계 상황에서 겪는 인간의 공포, 본능과도 같은 생존의 집념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