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서 50년 만에 찾은 '말 없는' 전사자의 유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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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이태윤의 유족을 찾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인근의 비무장지대(DMZ)에서 5일 유해 1구를 발굴했다. 유해가 발굴된 곳은 DMZ 철책으로부터 북쪽으로 400m 떨어진 야산의 산등성이였다.

전시에 가매장됐던 유해는 50여 년간 비바람을 맞은 탓인지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자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유골이 드러났다. 바로 옆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유해를 감싸듯 휘감고 있었다.

유해의 왼쪽 가슴 위에는 미제 군용 스푼이 놓여 있었다. 군복 윗도리 주머니에 꽂혀있었을 군용 스푼은 군복이 삭아 없어진 뒤 가슴에 얹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게 유해감식단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스푼 손잡이 뒷면에는 영문으로 'Lee Tae Yoon'(이태윤)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유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오른쪽 가슴 위에는 7사단 부대 마크인 '칠성'이 새겨진 원형 동판이 50여 년의 세월 속에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스푼 옆에는 미처 다 쏘지못한 M1 소총 실탄 50여 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유해가 발견된 장소에서 2㎞쯤 떨어진 북쪽에는 북한군 초소가 있다. 이 일대에선 6.25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 7, 8사단은 1951년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당시 북한군 6, 12사단이 백석산(1142고지)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유해의 주인공도 이 전투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해감식단 관계자는 "DMZ 내 아군 GP(전방초소) 보급로 확장공사를 하다 유해를 발견했다"며 "DMZ 내에서 유해 발굴은 두 번째"라고 말했다.

병적조회 결과 '이태윤'이란 6.25때 전사자는 두 명이다. 7사단 5연대 소속 1명과 8사단 소속 1명이 있다. 8사단 소속 전사자의 유가족은 병적기록에 등재돼 있으나 7사단 소속 이태윤의 유가족은 실려 있지 않다. 두 사람 모두 계급도 없다. 유해감식단은 일단 8사단 전사자인 이태윤 유전자(DNA)와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부대 마크로 미뤄 7사단 5연대 소속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유해감식단의 관계자는 "DNA 감식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도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태윤이라는 전사자를 아는 참전용사와 유가족, 친지의 연락을 바란다"고 말했다(02-748-4999).

현재 DMZ 내에는 1만3000여 명에 이르는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는 앞으로 남북 군사회담을 통해 DMZ 내에서 유해공동발굴 또는 남측의 단독발굴 문제를 북측에 제안할 계획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발굴된 1852구의 유해 중 55구만 신원이 확인됐으며 유가족을 찾은 유해는 26구에 불과하다.

이철희 기자

◆유해발굴감식단=6.25전쟁 50주년인 2000년 만들어졌다. 6.25 전사자 중 찾지 못한 13만여 명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서다. 매년 100~300구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처음엔 육군의 조직이었으나 관련 법이 제정돼 1월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확대 개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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