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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궐선거 … 임실 군수들의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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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또 보궐선거를 해야 하나. 군수를 잘못 뽑은 우리가 부끄럽다."

6일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재래시장. 주민들은 김진억 군수가 건설업자에게서 공사를 맡기는 대가로 '2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다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5일 법정 구속되자 "역대 군수들이 모두 비리로 구속돼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임실 출신'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창피하다"며 한탄했다.

김민구(58.농민)씨는 "군수야 죄를 졌으면 벌을 받는게 당연하지만 왜 우리가 이런 불명예를 뒤집어 써야 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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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군청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앞날을 걱정하는 등 술렁거렸다. 공무원 김모(46)씨는 "당선된 군수마다 모두 불명예 퇴진을 하니 공무원으로서 주민들 보기가 민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 이모(42)씨는 "또 보궐선거를 하면 세 번째"다. "보궐선거 준비도 이젠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부 주민은 민선 출범 이후 단체장들이 줄줄이 구속된 것에 대해 "단체장을 잘못 뽑은 데 대한 자업자득"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민 송석현(55.의사)씨는 "전임자가 비리로 처벌되는 것을 보고서도 후임자가 그릇된 행태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지연.학연으로 투표하지 말고 청렴하면서도 능력있는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44)씨는 "군을 잘 이끌라고 뽑아주었더니 군수들이 배신했다"고 말했다.

◆민선 군수 3명 모두 구속=민선 1~4기를 거치는 동안 임실군에서는 선거로 탄생했던 군수 3명(재선 포함)이 전원 구속되는 진기록을 낳았다.

1995년 민선 1기 단체장에 당선된 이형로(71) 전 군수는 재선에 성공했지만 2000년 12월 쓰레기 매립장 부지 조성 공사를 하면서 업체 선정 부탁을 받고 허가 서류 일부를 임의로 꾸며 건네준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등)로 구속됐다. 구속된 지 3일 만에 사퇴했다.

이 전 군수의 사퇴로 2001년 4월에 실시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철규(67) 전 군수도 민선 3기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2년 만에 구속됐다. 이 전 군수는 2003년 8월 군수 관사에서 직원들의 승진 청탁과 함께 모두 90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9000만원을 선고받았다.이 전 군수는 검찰 조사에서 서기관 승진자는 5000만원, 사무관 승진자는 3000만원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서5 사3' 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보궐선거 또 치르나"=임실군의 현재 인구는 3만3000여 명, 연간 예산은 2000여억원 안팎이다. 이 중 인건비.경상경비를 뺀 사업비는 1300여억원에 불과하다. 재정자립도 10.6%로 180여 개 군.구 기초 자치단체 중 하위 여덟 번째에 불과할 만큼 열악하다. 이런 임실군이 보궐선거를 한 차례 치르기 위해서는 3억200여 만원이 필요하다. 내년에 보궐선거를 치를 경우 모두 세 차례의 보궐선거에 임실군 주민들은 1인당 3만원꼴의 세금을 내는 셈이다.

전북 참여자치 시민연대 김남규 사무국장은 "구속된 단체장은 하루 빨리 퇴진해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군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며 "단체장의 비리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민소환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실=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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