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에 고려할 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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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제기했던 「작은 정부」론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민간활동에 대한 과도한 정부의 간섭을 줄여 창의를 북돋운다는 측면에서는 작은 정부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왜곡을 교정하고 균형을 회복시키는 국가의 역할은 작은 정부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차기대통령진영에선 새로이 「작지만 강한 정부」란 개념을 내세운다. 정부기구를 어떻게 가져가느냐 하는 문제는 실은 그러한 수사차원이 아닌 국정운영의 철학에 관한 문제다. 차기정부의 생각은 요컨대 방만하지 않은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파킨슨법칙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개혁조치가 없는 한 정부의 기구와 인원은 늘어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필요해진 기구를 신설하는 데는 재빠르지만,일단 만들어 놓은 기구는 기능이 바뀌어 중요성이 사라져도 그대로 남겨두려고 한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국가기능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해 정부조직을 그에 맞게 재조정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81년 정부기구의 전반적인 재수술후 12년이란 세월이 흐른만큼 새정부 출범에 즈음해 정부조직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는 과정은 불가피하다. 81년 이후의 부분적인 조정도 기구의 확대·신설위주였기 때문에 그동안 우선순위가 낮아진 기구의 축소·폐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자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1차적으로 체육청소년부와 동자부를 교육부와 상공부로 흡수 환원시키려는 건 이해할만 하다. 다만 지금도 역시 중요한 우선순위를 지닌 에너지정책을 산업정책의 일부로만 다루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있었느냐가 문제다.
가급적 신정부의 각료 임명전에 정부기구개편을 하는건 수순상 옳다. 그러나 거기엔 조건이 있다. 새정부의 국가운용에 대한 철학과 정책의 우선순위,그리고 현재 정부기구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연구·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기구개편을 1,2차로 나누려는 것을 보면 그러한 연구·검토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민자당은 두 부의 폐지를 추진하게된 연구·검토 결과와 다음 단계의 기구개편프로그램을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또 상당한 내부논의가 있는 것으로 보도된 경제기획원의 경제부처 조정기능은 어떻게 할 것인지,지방자치의 전면 실시를 앞두고 내무부의 바람직한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지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최근 숱하게 제기된 대통령직속 위원회들의 효율성 문제도 보다 정밀하게 다시 논의돼야 한다.
정부조직에 대한 연구·검토작업은 너무 시간을 끌지 말고 집중적으로 진행해 결말을 내는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각 부처의 이해때문에 빛도 못 보고 혼선만 야기한채 사장되는 6공초기의 전철을 반복할 위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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