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은행 벽」 높아 사업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내기업 외제만 선호 신상품개발 “물거품”/폐업선언한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속사정
일본 등에서 전량수입하던 컨베이어용 모터롤러를 발명,한땐 창업지원도 받고 앞길이 유망하던 우성정공(경기도 파주군 금촌읍)의 조명식사장(48)은 최근 「사업포기」를 마음먹은뒤 허탈감과 분노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독일에서 모터기술자로 5년동안 일하다 돌아온 조 사장은 지난 85년 냉열기공장을 세운뒤 87년에는 2년간의 연구끝에 모터롤러를 개발,중소기업 진흥공단에서 4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우성정공을 창업했다.
그러나 조 사장은 처음부터 골이 깊은 「행정의 벽」「은행문턱」과 국내 기업들의 「외제선호」에 부닥쳐야 했다. 『모터롤러 한개에 13만∼14만원 하는 일본 제품의 절반수준 가격인데도 국내 기업들이 외면해 1백여업체에 공짜로 견본을 보내는 등 갖가지 노력끝에 국내시장의 20% 정도를 차지하게 됐어요. 그러자 일본 기업들이 8만원으로 값을 내려 덤핑공세를 했는데 정부는 단속도 않고 일부 국내 기업실무자들은 여전히 「국산을 쓰다 문제가 생기면 진급에 지장이 있다」며 외면하는 거예요.』
그러던중 냉열기판매가 부진,지난 91년 6월 「냉열기」쪽에서 4천만원의 부도가 났다.
『부도직전에 2억원 가까운 집을 담보로 은행을 찾아다녔지만 은행마다 돈을 꿔주지 않더군요,』 91년말에는 부가가치세 3백만원을 못내 불광동의 집이 세무소에 의해 또 압류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조 사장은 닭털·닭피·쇠똥 등 폐기물을 섞어 사료·비료를 만드는 축산폐기물 처리장치를 개발하는 등 총 4건의 특허를 신청,꾸준히 제조업체로서의 꿈을 살려나갔다. 그러나 지난달 8일 세무서가 불광동집의 공매처분에 들어가면서 조 사장은 사업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었다.
『정부행정이 너무 경직돼 있고 강제조항이 많습니다.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장사가 안돼 세금을 못내다 그나마 1백만원을 갚았는데도 무조건 공매처분 하려는 것을 보니 정부행정에 회의가 생기더군요.』
종업원들의 점심값을 아끼려 부인이 공장에서 점심을 해주다 병이 나 드러눕고 74세 노모까지 일터로 나올 정도로 안간힘을 쓰며 『한때는 국가경제를 살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는 조 사장.
그러나 이제는 『「경매노이로제」에 걸린 가족들을 위해 직장에 재취업하거나 기술자문으로 먹고 사는 것이 속편할 것 같다』는 그의 항변은 많은 중소업체들이 겪는 오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오체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