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치전에만 750억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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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정치의 힘 겨루기였다."

오스트리아의 알프레트 구젠바워 총리는 5일(한국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을 강력히 비난했다. 후발 주자였던 러시아의 소치가 한국의 평창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제치고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권을 따낸 데엔 스포츠 정신보다 돈과 권력이 역할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포츠를 위해서도, IOC와 올림픽 운동을 위해서도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IOC가 앞으로 가려고 하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결정"이라며 "정치권력과 자금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잘츠부르크가 설 땅은 없었다"고 말했다. 잘츠부르크 시민의 반응은 더욱 격렬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잘츠부르크의 한 시민은 "명백히 돈에 굴복했다. IOC의 주된 관심은 결국 스포츠가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IOC 총회가 열린 과테말라시티 현지에서는 소치의 물량공세가 커다란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고 있다. AFP통신은 소치가 이번 유치전에서 6000만 유로(약 750억원)를 쓴 것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일 IOC 위원을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경기장 건설 등에 120억 달러(약 1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공약하기까지 했다. 겨울스포츠 시설이 부족해 11개 경기장을 모두 새로 지어야 하는 소치의 약점을 천문학적 금액의 지원 약속으로 상쇄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대회 운영비로도 이미 15억 달러(약 1조4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공사로 환경 파괴가 심각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알렉산드르 주코프 러시아 부총리는 "이미 자연보호를 위한 예산으로 1억5000만 달러(약 1400억원)를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거대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의 힘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유럽에서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절반 정도를 공급하는 가스프롬은 막강한 자금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로비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이 가스프롬 외에 러시아의 주요 대기업에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이런 물량공세는 앞으로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도시에 상당한 부담을 안길 것으로 예상된다. IOC 내에서는 이번 유치전에 들어간 돈이 2012년 여름올림픽 유치에 나선 5개 도시가 쓴 금액과 맞먹는다며 경쟁적으로 돈을 쏟아붓는 현실에 대해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IOC 집행위원인 노르웨이의 게르하르트 하이베르크는 독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많은 돈이 얽히고 쓰여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을 목격했다. 그들은 초대장과 선물을 포함한 여러 방법을 사용했다"며 이번 투표에 뇌물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과테말라시티=성백유 기자, 서울=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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