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문화」를 수술해야 한다/정규웅(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우리 속담에 「강남 장사다(강남상)」는 것이 있다. 조선조때 유행했던 속담들을 모아놓은 한문속담집 『동언해』에 수록돼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속담은 조선시대만 해도 널리 회자됐던 것 같다. 이 속담은 두가지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하나는 「이득이 많은 장사」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제 이익만 탐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졸부가 만든 향락풍조
물론 여기서의 「강남」은 단순히 「강의 남쪽」이라는 뜻일뿐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강너머 남쪽에서 장사해 큰 돈을 번 사람이 많았거나,강남장사로 부당한 이득을 취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속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의 개발붐에 편승한 오늘날 강남지역의 발전과정을 돌이켜보면 그 속담은 마치 지금의 강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첫번째 의미로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같은 일반적인 인식은 강남지역이 지난 20여년 사이에 번영을 구가하면서 국내 최대의 상업지대로 발전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풍수지리의 대가로 공인받고 있는 한 인사조차도 「강남지역은 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장담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강남은 여러모로 「풍요의 땅」 「혜택받은 땅」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다만 그 풍수지리의 대가가 덧붙이는 바 「하지만 사대부가 살만한 곳은 못된다」는 대목이 오늘날의 실상과 관련해 음미해볼만 하다.
그 말은 강남의 개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독특한 문화현상과 무관하지 않을성 싶다. 발전의 속도에 따라,혹은 빈부의 격차에 따라 문화현상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라는 보편적인 이론을 감안할때 강남지역에 독특한 문화권이 형성된 것은 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지역의 특성상 그것이 소비문화·향락문화에 바탕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의 모든 첨단유행은 강남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든가,최고급을 즐기려면 강남으로 가야 한다는 따위의 말들이 언제부터인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오렌지족들은 「부산물」
그러한 문화현상을 거두절미하고 나무라기에 앞서 우려해야 할 것은 그 형성배경이다. 조상들의 말씀에 「돈은 어렵게 벌어야 어렵게 쓴다」는 것이 있다. 이 말은 뒤집으면 「돈은 쉽게 벌면 쉽게 쓰게 마련」이라는 뜻과 같다.
강남개발의 특징은 개발 입안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수많은 졸부들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돈 무서운줄 모르고 흥청망정 써대는 이 강남 졸부들이 앞장서 형성한 것이 소비문화·향락문화로 대변되는 「강남문화」다.
그들이 만들어낸 「강남문화」는 그들 다음 세대에 이르러 마약·섹스 등 변모된 퇴폐행위로 걷잡을 수 없이 치닫고 있으며,다른 지역에까지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는데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마약상용행위로 구속된 5명의 이른바 오렌지족들은 이를테면 퇴폐적 「강남문화」가 만들어낸 부산물인 셈이다. 나이 스물안팎의 이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한달에 수백만원씩의 용돈을 쓸 수 있는 만큼의 부유층 자제들이라 한다. 한달 10만원 정도의 용돈이 너무 적어 대리시험제의에 응했다가 자수한 한 지방 검사장의 아들과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오늘의 향락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태도가 그들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모가 평생 펑펑 쓰고도 남을만한 재판을 가지고 있는데 도대체 공부는 왜 하고 일은 왜 하느냐 하는 것이 이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니 더 할말이 없을 지경이다.
최근 일본의 한 시사주간지는 한국의 신흥 부유층과 오렌지족을 다루면서 모은행 강남지점장의 말을 인용,『강남구에만 수십억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가구가 7만가구에 달하며,억대의 돈을 개인적으로 예금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많다』고 보도했다. 외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우리네 강남 졸부들의 행태는 심상치 않다.
○이웃 주민들도 모멸감
그들 신흥 부유층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위화감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강남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심한 모멸감을 갖게 하고 있다. 개발 초창기부터 20여년간 강남에 살고 있다는 어느 대기업체의 중견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강남에 살고 있다고 하면 대개는 떼돈을 번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들이 역겹다. 실제로 금시발복한 사람들이 많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 정착한 사람들이다. 왜 도매금으로 우리까지 넘어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강남문화를 오염시키는 신흥 부유층들에 대해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대수술이 있어야 할 것이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