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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녹차 향기로 더위를 씻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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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숨이 턱턱 막히는 바깥 공기와는 단절을 선언하고 찬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실내와 자동차 속으로 피해 다닌다. 속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더위를 가시게 해줄 찬 음식만 챙겨 먹는다. 그런데도 부족해 하루 종일 헉헉대며 등줄기에 줄줄 땀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녹차를 즐겨 마신다면 여름 나기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더워서 죽을 지경인데 펄펄 끓는 물에 우려낸 녹차를 마시라는 얘기다. 생뚱맞은 조언을 하는 사람은 차(茶)전문가 김정연씨. 눈을 크게 뜨며 납득하기 힘든 표정을 짓자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녹차는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은 것이라 찬 본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적합하지요. 마치 여름철에 푸성귀를 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차는 찻잎의 발효 정도에 따라 ‘성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발효하지 않은 녹차는 찬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발효한 홍차의 경우엔 더운 성질로 뒤바뀌고, 반발효차인 우롱차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성질을 갖게 된다. 그러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날씨에 맞춰 차를 골라 마시는 것이 몸에 더 이롭다. 겨울엔 홍차가 좋고, 가을엔 우롱차가 제격이란다. 게다가 차는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효능도 있다. 예부터 수행정진하는 스님들이 항상 차를 곁에 둔 이유이기도 하다.

 

가루녹차 아이스크림

김정연씨는 “맛있는 녹차를 마시려면 좋은 물로 잘 우려내야 한다”며 뜨거운 물에 진한 녹차 우려내듯 맛있는 녹차 만들기에 대해 술술 말을 풀어낸다. 좋은 물이란 맛과 향이 없는 것인데 시중에서 파는 생수를 쓰면 무난하다고 한다. 하지만 물을 끓이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다. 덜 끓여 맹탕이거나 너무 많이 끓이면 차의 온전한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 일반 가정에선 오히려 전기포트를 쓰는 것이 무난하다. 끓인 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 한 김 식힌 뒤 사용한다. 이때의 온도가 대략 80도. 2분가량 우린 뒤 찻잎을 걸러내 마시면 가장 좋은 맛이 난다. 두 차례 더 우려 마실 수 있단다.

 “차 마시기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꼭 뜨거운 차만 마시라는 법도 없지요.” 김씨가 뜨거운 차를 우려낸 찻잎에 갑자기 찬물을 부으면서 차갑게 우린 녹차도 마셔보자고 제안한다.

 차가운 녹차를 마실 땐 유리 다기가 제격이다. 투명한 유리 속으로 다시 살아나는 찻잎을 감상할 수도 있고, 색을 보고 잘 우러났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찻잎을 뜨거운 물로 한 번 우려내 따뜻하게 마신 뒤 찻잎이 부드러워지면 생수로 우려내 차갑게 마신다. 처음부터 다관에 찻잎을 넉넉히 넣고 찬 물을 부어 숟가락으로 찻잎을 으깨 마셔도 좋다고 한다. 이때 찻잎을 차 탕 속에 마냥 두면 떫어지므로 적당한 시점에 찻잎을 건져내야 한다.

 “우러난 색이 가장 아름다울 때 맛도 가장 뛰어납니다.” 초보자는 이때 찻잎을 건져내면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녹차를 좀 더 맛있게 즐기려면 가루녹차(말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냉장고에 요구르트나 우유가 있다면 거기 가루녹차를 넣어 거품이 나도록 잘 저어 낸다. 뜨거운 말차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올려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찬 성질의 녹차를 차게 자주 마시는 것은 몸에 그다지 이롭지 않다고 한다.
 김씨는 “차 마시는 것을 도(道)나 예(禮)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기호식품인 만큼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김정연씨는 중국 저장(浙江)농대에서 차를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일반인 상대의 차 강의도 하고 있다. 저서로 『같은 잎 다른 맛 중국차 이야기』가 있다.

인사동 멋있는 찻집

■휴=청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인사동 대표 찻집. ‘나무에 기댄 사람’을 문자화한 한자 휴(休)의 뜻 그대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땀을 식히는 데는 냉수정과차(6000원)가 제격이다. 녹차는 5000원부터. 02-722-8234.
■아름다운 차 박물관=차의 세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 직원들이 차 마시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줘 초보자도 불편 없이 차를 대할 수 있다. 세작차 8000원. 예촌 골목 안. 02-735-6678.
■소금인형=한옥의 서까래와 천장, 꽃담과 전통 민화로 꾸민 실내에서 각종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여름철엔 얼음이 소복하게 쌓인 녹차빙수(6000원)가 인기다. 녹차는 4500원. 02-725-8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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