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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불만… 명분찾기/대만,한국과 외교협상 왜 늦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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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기」내세워 신경전,불편한 감정표시/김 차기정부에 큰 기대… 물밑로비 활발/일부 자성론… 결국 실리 취할듯
한국과 대만이 외교관계를 단절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이를 재조정할 협상은 아무런 진전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는 1만8천명의 화교가 살고 있고,대만에는 3천2백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또 한국은 대만의 아홉번째,대만은 한국의 11번째 교역상대국이다.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도 양국정부의 협상은 커녕 신경전만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대대만 교역량은 91년과 92년을 비교할 때 수출이 16억달러에서 23억달러로 44.9%나 늘어났고 수입은 15억달러에서 14억달러로 줄어들었다. 대대만수출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국가건설 6개년계획의 특수가 생긴 탓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단교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에는 6개년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교역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대만측은 한국산 자동차의 수입쿼타(연간 약 1백14만달러)를 아예 없애버렸고,연간 3천만달러 상당의 사과·배와 대만산 바나나의 교환무역을 중지해 일부 업체·농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항공기·선박의 운항도 대만측이 일방적으로 중지시켰다. 한국측은 일단 기존의 협정들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유지시켜 운항을 계속하거나 관련협정을 조기에 민간차원으로 전환하자고 요구했으나 대만측은 이에 대한 협의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만측이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물론 한중수교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원인이고,또 명분이다. 더군다나 대만은 지난달 19일 입법원 총선거를 실시하게 돼있어 집권당은 「10년래 최대의 외교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한국측에 떠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중순 한국정부는 비공개리에 대사급 교섭단을 이미 대북에 파견했다. 따라서 사실상 공은 대만측에 넘어가 있으나 대만정부는 대외적으로 한국이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만측은 한중수교를 성사시킨 현 노태우정부보다는 김영삼차기정부측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어 여러가지 구실로 협상을 늦추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김 차기대통령의 측근인 정재문외무·통일위원장은 대만의 국기·국호를 쓸 수 있도록 「위원회의 의견」으로 외무장관에게 권고했었다. 특히 김 차기대통령은 대통령선거 당시 직접 이등휘총통과의 서신 교환내용을 공개하는 등 새 정부의 대대만정책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조짐들을 보여왔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한국내 인맥이 있는 대만측 로비스트들이 30여명이나 서울에 들어와 대통령인수위 등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간 협상에서 표면적으로 부각된 구체적 쟁점은 상대국에서 국기·국호의 사용을 허용하는 문제다. 대만은 이 문제를 「체면」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상 대만정부는 한국과 직접 대좌를 피하면서 주한 화교들을 앞장세우는 셈이어서 대북의 중국시보도 지난 14일 비판 사설을 실었었다.
대만측의 지적대로 라트비아·피지 등 16개의 약소국가는 「중화민국」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경제원조 등 「특별한 이유」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미국·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는 국호·국기사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어느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는 이를 전제조건으로까지 삼는 것은 불공평하고,다분히 감정적이기까지 하다.
한국측도 화교학교의 청천백일기 게양을 강제적으로 막기보다는 화교들의 자율적인 자제를 기대하는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명동 중국대사관과 붙어있는 한성화교학교의 경우에는 중국대사관 건물의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묵인하기 어려운 처지다. 심지어 중국측은 이 학교도 청나라때 구입한 것이라며 「비외교 자산」에 대해서도 반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화교학교측이 계속 대만의 무리한 입장만을 따를 경우 학교재산을 중국측에 넘기거나,화교학교측이 「불법적인 정치활동」을 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만내에서도 자기네 외교부의 대응에 대해 「감정적이고 졸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중수교의 책임을 지게된 첸푸(전복) 외교부장과 차기부장직을 놓친 진수지(김수기) 전 주한대사의 개인적인 「감정」이 교섭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판단때문인지 대만측은 실리외교로 완전히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연말의 총선을 계기로 이달말 내지 내달초에는 개각할 예정이며,새 외교부장에는 샤오완창(숙만장) 경제부장을 기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경우 협상은 급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부는 이에 따라 한국의 새정부가 출범하기 전이라도 대만의 개각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협상을 재개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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