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도 막지 못한 "음의 향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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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그래도 막은 오른다」-.
적설량이 2m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폭설 속에 진행된 93예음 설악 페스티벌(13∼17일 속초문화회관)은 눈 때문에 길이 막혀 프로그램참가자가 서울로 되돌아가고, 연주자들이 예정된 연주회장에 갈 수 없어 즉석공연장을 마련하는 등 해프닝의 연속 속에서도 5일간의 페스티벌을 큰 말썽 없이 치러 내 어떤 악조건 아래서도 공연은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흡사 영화에서나 보던 외국의 풍경으로 여겨질 정도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속초의 겨울풍경을 만끽하며 클래식음악으로 정취를 더해 주던 이 페스티벌은 그러나 14일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큰 눈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올해로 7회 째가 되는 이 페스티벌이 겨울에 열리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특히 올해는 그간의 집안식구들끼리 차리는 잔치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규모로 발돋움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이성주(재미 바이올리니스트), 김창국(동경예술대학 교수·플루티스트), 핀란드 시벨리우스 4중주 단을 초청하는 의욕적인 기획을 마련해 주목을 끌었었다. 설악 음악회를 통해 많게는 2백여 명의 청중들을 동원하며 그런대로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해 오던 페스티벌이 파행을 기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16일.
시내버스가 운행을 중단할 정도로 교통망이 마비되는 혼란 속에서 주최측은 주 개최지인 속초문화회관으로 가기가 불가능해지자 숙소인 설악동 삼성콘도미니엄 1층 라운지를 공연장으로 급조, 음악회를 계속하는 한편 공개레슨은 취소했다. 이 같은 주최측의 기지(?)에도 불구하고 이날 특별프로그램인 국악연주회는 끝내 반쪽연주회가 돼 버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21시간만에 명창 안숙선씨가 도착, 오후2시로 예정됐던 연주회가 오후6시에 열려『춘향가』중「어사 출도 대목」을 연주하기는 했으나 고수를 맡게 돼 있던 김청만씨가 끝내 오지 못한 채 서울로 되돌아감으로써 고수 없는 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17일에도 오후2시 속초 문화회관에서 열린 어린이를 위한 가족음악회의 내레이터로 참가키로 했던 최영미씨가 한계령을 끝내 넘지 못한 채 서울로 되돌아가 부랴부랴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던 한 학생을 대역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가족음악회에는 약1백50명의 청중이 모여들어 연주자들에게 힘이 됐다. 【속초=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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