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내 코가 석 자’ 속담은 어떻게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산업자원부가 이달부터 건물 면적 표기에 평(坪) 단위를 사용하면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반드시 m 단위만 사용하라는 것이다. 자(尺) 단위의 평은 우리 문화에서 유구한 전통을 가진 인간 중심 단위다. 한 평은 6자 어른이 큰 대자로 누우면 차지하는 면적이다. 아파트 25평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국민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러나 m는 인간과 아무 관련 없는 과학적 치수일 뿐이다. 서양의 나폴레옹 시절 지구 둘레를 4000만 분의 1로 나눈 인위적 단위에 불과하다. 따라서 1㎡는 인간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역사상 단위는 인체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내 코가 석 자’ 등의 우리 속담도 인체 단위로 돼 있다. 돌팔매 거리, 한 마장 거리, 천장 높이, 문짝 폭도 모두 인체 치수 중심으로 정해졌다. 무게는 사람이 들 수 있는 분량, 부피는 마실 수 있는 분량 단위로 정해졌다. 자기 체험으로 주위 대상과 연관시켜 살아 온 인간 중심의 척도다. 인간 척도(人間尺度: human scale)는 현상학적 철학에 기초한 탁월한 단위다.

 그런데 단위의 국제적 통일이 꼭 필요할까. 첨단 시대에도 선진국인 미국·영국에서는 피트·파운드 등의 단위를 쓰고 있다. 신기하게도 동양의 ‘자’ 단위와 영미의 ‘피트’ 단위는 똑같이 30㎝다. 그들의 집 면적을 나타내는 ‘평방피트’는 우리의 ‘평방자’이고, 평의 36분의 1이다. 척도 단위는 목적에 따라 적합한 단위를 사용하면 된다. 지금도 국제 공용 표준 해도에서 물 깊이를 표시할 때는 6자, 즉 한 ‘길’ 단위(fathom)로 표시한다.

 식당에서 막연히 1인분으로 파는 것은 단속해야 하겠지만, 정확한 단위인 1근으로 파는 것에 대해선 당국이 무게를 속이는가 여부만 감시하면 된다. 통일 단위로 단속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국력을 낭비하고 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법령이다.

 단위를 통일하려는 목적이 자원 낭비를 막으려는 효율화·표준화 작업의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조건 m단위로 통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과학에서 m단위로 통일해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단위는 그대로 둬, 지금처럼 ‘평’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희봉 중앙대 교수·건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