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질서 혼란… 또 다른 위협/아랍권,이라크 응징 왜 반발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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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후세인 약화땐 이란 부상/반서방 분위기 고개들어/유엔결의 집행 이중 기준 비판도
미·영·불 연합군에 의한 이라크 공격이 계속되면서 아랍권에 연합군 공격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18일 3차공격이 단행되자 지난 13일 1차공격 당시의 우려섞인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반미·반서방 분위기까지 드러내고 있다.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1차공격 직후부터 연합군의 공격을 비난,유엔결의를 무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세르비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군사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이라크에 대해서만 강경대응 하는 서방측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특히 이번 3차공격에 대해서는 『이라크 형제에 대한 공격은 아랍 집단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강경한 어조로 연합군 공격을 비난하고 아랍국들의 결속을 촉구하고 나섰다.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일부 회교국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반미데모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2년전 걸프전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일부 아프리카 회교국을 제외한 전아랍권이 다국적군을 지지하고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비난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러한 태도변화는 무엇보다 연합군의 대이라크 공격이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기는 커녕 세력균형을 파괴,오히려 혼란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사태는 중동의 역학관계를 뒤흔들었다. 이는 각국 지도자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켜 후세인을 응징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걸프전 당시와 다르다는 것이 아랍권의 기본시각이다. 비행금지구역 침범,유엔사찰 비행기착륙 금지 등 이번 후세인의 「도발」은 쿠웨이트 침공과는 달리 중동 평화를 위협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미국 등의 「과잉반응」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아랍권의 태도변화는 미·영·불·러 4개국 주도로 지난해 8월 이라크 남부시아파 회교도 거주지역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할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걸프전 당시 반이라크 진영에 가담했던 시리아가 『이라크의 통일성을 위협하는 어떠한 조치도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등 다수 주변국들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라크 남·북부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치는 남부에는 시아파 회교도국가,북부엔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수립을 조장하는 것으로 이라크 분할과 후세인 약화 및 축출을 의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측의 구도대로 사태가 전개된다면 결국 걸프전 이래 계속 영향력을 확대해온 이란에 더욱 유리할뿐 아랍권에는 혼란만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란은 중동내 회교국가이긴 하지만 인종적으로 아랍권과 다르고 회교 근본주의에 입각한 혁명수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의 경계대상이 돼왔다.
더욱이 이란은 최근 북한으로부터의 스커드미사일 도입,러시아 잠수함 구입 등 군비를 착실히 늘려왔다. 지난해에는 걸프해 3개섬의 영유권 문제를 제기,아랍에미리트연합과 영토갈등을 빚었다.
그렇지 않아도 중동의 강국인 이란의 세력확대와 회교혁명 수출전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아랍국들 입장에서 보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통한 시아파 회교도국가 수립지원,이라크 약화를 노리는 서방의 대이라크 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란을 지원하는 정책일 수 밖에 없다.
서방측이 반제국주의·반미를 내세우는 이란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란의 최대 견제세력인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압박하는 노선을 취함으로써 이란을 더욱 강대하게 만들어 중동의 패자로 부상하는 것을 돕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아랍국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집트 등 온건 아랍국은 대이라크 추가응징에 대한 반대,유엔결의 집행에 대한 2중 기준의 비난 등으로 우려를 표출하고 있으며 리비아 등 강경 아랍국은 연합군의 공격을 『전아랍권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반미투쟁을 촉구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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