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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아내의 '연기 실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호 14면

“나도 저 여자가 먹는 것과 똑같은 것 주세요!” 식당에서 여주인공 샐리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듯한 연기를 기막히게 해내자 이를 보던 옆 테이블 할머니가 같은 메뉴를 달라며 외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고전이 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명장면이다.

남녀관계에 대해 늘 갑론을박하던 해리와 샐리. 식사 중에 해리가 자신은 여자를 100% 만족시키며, 자신의 파트너 중에는 오르가슴을 가장했던 여자가 한명도 없었다고 주장하자 샐리가 직접 어떻게 가짜 오르가슴 연기를 하는지 보여준다. 이 장면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고, 또 수많은 남성이 해리처럼 당황했다. 혹시 내 여자도 좋아하는 척했던 것은 아닐까.

필자가 만난 K씨 부부는 한국판 ‘해리와 샐리’다. 아내가 목석처럼 누워만 있거나 그 반대로 처음부터 신음소리만 낸다고 불평하는 K씨.
“괴성만 질러대니 아내가 정말 좋은지 도대체 감을 못 잡겠고, 연기하는 듯해서 오히려 흥분이 싹 가셔요.”

그런데 아내도 불만이다. 아내는 가벼운 스킨십만으로도 좋은데, 남편은 오르가슴 여부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매번 좋았느냐고 확인해요. 난 꼭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오히려 눈치만 보니 성흥분에 몰입하지 못해요.”

남성은 발기에서 사정까지 성 반응 단계가 비교적 단순해 오르가슴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여성은 오르가슴을 느꼈는지를 알기가 애매하다. 이 때문에 가장하기도 쉽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연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 남성이 성취감과 만족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K씨처럼 아내의 오르가슴 여부에 집착하는 완벽주의적인 남편을 둔 아내는 남편이 실망할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오르가슴을 연기하기도 한다. 가끔이라면 비록 연기라도 신음소리가 심리적 흥분을 고조시켜 오르가슴을 유발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가장하면 이는 큰 문제다. 아무리 해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는 불감증, 즉 오르가슴 장애에 해당한다. 이를 방치하면 본인과 상대 남성의 만족도가 떨어져 성욕 저하 등 이차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자신은 좋지도 않은데 남편이 재미없어 하고 바람을 피울까봐 어쩔 수 없이 오르가슴을 연기한다면 그 여성은 상당히 불행한 상태라 하겠다.

K씨 부부 같은 이들의 성생활에선 매번 최고의 극치감을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서로 함께 편히 즐기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날은 내가 더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날은 상대가 더 느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아내의 오르가슴 연기가 가끔이라면 너무 주눅들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아내가 나를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강동우·백혜경은 서울대 의대 출신 전문의(醫) 부부. 미 킨제이 성 연구소와 보스턴ㆍ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성(性) 관련 분야를 두루 연수, 통합적인 성의학 클리닉ㆍ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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