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운동보다 작은 실천을…”/의식개혁 관변단체 통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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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필요성·방법싸고 비판론 높아/기존단체 반발… 과시용 우려도
민자당은 11일 「신한국건설운동」(가칭)이란 범국민적 의식개혁운동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 필요성·방법론을 놓고 벌써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사회의 여러 병리현상 치유책으로 굳이 또 하나의 「운동」이 필요하느냐는 물음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운동단체는 한마디로 『통합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도 『군사문화의 구태』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민자당은 의식개혁운동의 필요성과 효율을 옹호하고 있다. 당 관계자들은 뭔가 다시 뛰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선 강력한 자극·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삼 차기대통령이 『질서와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를 샘솟게하는 청부사상을 가지도록 국민의 의식개혁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던 공약의 한 실천방안으로 당직자들이 국민운동단체의 통합추진체를 구상했다고 한다.
박희태대변인은 『신한국건설을 위해선 대대적인 의식개혁운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강용식제1정책조정실장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기분으로 새롭게 해보자는 운동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생리상 운동체가 없으면 운동의 기력이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민자당은 신한국건설운동을 민간주도로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사들이 민간운동체를 만들고 정부는 부득이한 경우에 지원만 해야한다는 것이다. 당은 민간기구가 출범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만을 주도한다는 설명이다.
고위정책관계자는 12일 이런 예를 들었다. 『3공 박정희대통령때는 사회가 규모도 작고 개발도상이어서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앞장서 끌고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져 획일적인 관주도가 불가능하다.』
「민간주도」라는 방향은 정했지만 당은 현실적인 고민에 부닥치고 있다. 새마을·바르게살기·새질서새생활 운동같은 캠페인들이 있는데 「신한국」을 추가하면 결국 옥상옥이 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그래서 당은 신한국운동아래 모든 운동체를 헤쳐모이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정책관계자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또 하나를 덧붙일 수는 없다. 뭔가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의 구상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의문을 품고있는 사람이 적지않다. 근본적으로 신한국창조는 거창한 캠페인으로 효과를 볼 성질이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비판자들은 구호만 요란한 캠페인보다는 신정부가 사회의 작은 구석부터 차근차근 고쳐 나가는 국정개선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정부패근절같은 명제도 구호로 외칠게 아니라 공무원이나 다른 부문에서 부조리가 줄어들 여건을 만들고 드러난 부패에 대해선 엄정한 응징을 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라는 논리다.
노태우대통령정부에서는 바르게살기·새질서새생활 등이 생겨났지만 국민의식 개혁에 영향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패와 무질서가 더 창궐하지 않았느냐고 비판자들은 꼬집고 있다.
전시·과시용으로 흐를 우려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내무부는 11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신한국창조를 위한 새시대국민운동추진」「공직부조리추방의 해」「정부와 민간단체를 총망라한 추진체제확립」 등 요란한 목표를 내세웠다.
일부에서는 새 운동체가 생기면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민주산악회·중앙청년연합회같은 김 차기대통령의 선거운동 사조직이 관여해 운동의 성격이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단체의 강력한 반발도 큰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관계법에 따라 내무부로부터 국고지원을 받는 단체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자연보호협의회 등. 새질서 새생활 운동은 총리실에서 관장하고 있다.
이들 기구는 이미 상당한 조직과 규모를 갖춰놓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부녀회원 2백만명(본부측 주장)을 비롯,회원이 2백50만명이다. 바르게살기운동은 전국적으로 사무처요원이 3백여명,회원이 12만명이고 국고지원 25억원을 포함해 매년 40억원의 활동비를 쓰고있다. 새마을운동 본부측은 새마을운동이 오랜 역사를 통해 뿌리를 내렸으므로 특별한 명분없이 다른 운동체에 흡수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채진사무총장은 『통합보다는 「신한국운동추진협의회」같은 기구를 만들어 각 사회운동을 조정하는 방법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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