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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6월] "돌 가져오다 검색에 걸려 수치스러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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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재작년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주먹만한 현무암 한 개를 주워서 손가방 안에 넣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일이 터졌지요. 검색대 앞에 섰는데 돌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그 순간의 수치스러웠던 마음을 이 작품에 담았지요.”
 중앙 시조백일장 6월 장원 최병상(41·사진)씨가 전한 집필 동기는, 작품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누구나 이런 감정에 시달린다. 딱히 지은 죄가 없어도, 검색대를 통과하다 보면 불안감 따위가 스멀스멀 들고 일어나는 걸 느낀다. 하물며 반출 금지 물품을 몰래 숨긴 몸이라면 식은땀 뚝뚝 안 듣는 게 외려 이상한 노릇일 수 있다.

 장원작 ‘검색대를 지나며’는 선명하다. 현대를 사는 오늘 우리의 옹색한 삶이, 기계 앞에서 무력하고 약해지는 현대인의 삶이 환하게 눈 앞에 드러난다. 심사위원들도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인간성 상실의 순간을 포착해낸 최씨의 감각을 높이 샀다.

 듣고 보니, 최씨의 시조 사랑은 20년이 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는 시조가 좋았다고 말했다.

 “교과서에서 접한 시조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우리 민족의 정서가 묻어 있고, 함축적인 무언가에 자꾸 끌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시조집 사서 읽고 필사하고 그러면서 시조를 혼자 익혔습니다.

 그러면 진작에 신춘문예 같은 데 응모라도 했을 법한데 막상 그러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스스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크게 욕심을 내서 이번에 처음 응모를 해봤고, 덜컥 장원을 차지한 것이다. 사는 곳과 하는 일을 물었더니, 최씨는 대구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향 자랑이 이어진다.

 “시조를 공부하다가 우리 고장 대구·경북이 시조의 본산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이호우·정완영·이영도·박시교 시인이 모두 우리 고장 출신이더라고요. 자랑할 만하지요.”
 대구·경북의 전통을 잇는 시조시인의 탄생을 예감한다.

손민호 기자



심사위원 한마디 사물이 너무 비유에 갇혀선 곤란

 이번 달은 응모자에 비해 응모 편수는 많았다. 문학 장르 중 벼랑에 다다랐다는 시조의 위기감을 작파라도 하려는 듯, 작품마다 애쓴 흔적들이 역력했다.

 시조도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만약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면 그것은 말한 사람의 책임인 경우가 많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얼버무려놓고는 못 알아듣는다고 책망하는 것은 주객전도가 아니겠는가. 남에게 어려운 시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서투르거나 빈약한 시라는 것을 선자(選者)인 우리도 늘 경계하는 바이다. 좋은 시란 비유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비유로 열어주는 시가 아닐까.

 투고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이나 상황이 너무 형식과 비유에 갇혀 있는 반면, 장원으로 뽑힌 ‘검색대를 지나며’는 현대인의 긴박함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사이버 시대에 우리 삶을 옥죄는 비인간성 혹은 인간성의 상실과 첨단 문명의 폐해를 구체적 삶의 현장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내 삶의 어두운 구석이 곧장 붙들려 나온다.’ 라고 은연중 암시해 놓기도 했다.

 차상으로 뽑힌 ‘내 얼굴’도 단시조로 흠잡을 데가 없는 수작이다. 특히 중장 끝 부분을 소유격 ‘의’로 놓은 독특한 구조가 종장의 뛰어난 비유와 접맥이 되어 시적 성취를 이룬다. 평범한 소재인 얼굴을 둥근 문으로 비유한 것이 말 그대로 열린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유가 너무 당돌하거나 작위적이면 공감을 얻기 어려운데 말의 쓰임새와 소재의 처리가 새롭고 독자적이다.

 차하로 뽑힌 ‘감나무’는 제멋대로 상처를 내며 가벼운 제스처만 취하는 시가 아님을 함께 보낸 시편에서도 잘 보여준다. 장마다 간결하게 처리한 삶의 진정한 아픔들이 수 놓이듯 아름답게 도드라져 있다. 다만 장과 음보에 관계없이 처리한 배열을 바로 잡았음을 밝힌다.

 끝까지 함께 오른 작품으로 배종도씨의 ‘토왕성폭포’, 이동화씨의 ‘울음’, 송재용씨의 ‘뫼풀꽃’, 성윤진씨의 ‘메주’, 송준면씨의 ‘담쟁이’, 김정원씨의 ‘가지를 품다’를 아쉽게 놓는다.

 자체로서 울림이 있고 괜찮은 시편이라도 모작의 흔적이 있거나 작가의 개성이 배어있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말 쓰임새가 평범해서 울림이 없다면 알기 쉽다는 것은 미덕이 되지 못하고 진부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진정한 시조로 거듭나지 못하고 감칠맛도 매력도 없이 스러지는 일이 없기를! 

<심사위원:이정환·이승은>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매달 장원·차상·차하에 뽑힌 분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접수처=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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